투자자가 말하는 ‘스타트업 투자의 비밀’

지난 23일(금) 광화문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제3회 스타트업 이노베이션 데이가 개최됐다. 투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이미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번 행사에는 180여명의 참가자가 방문했다. 특히 창업 초기나 투자 유치 과정에서 스타트업이 흔히 실수하는 사례별 이야기는 가장 반응이 좋았던 부분이다.

첫 순서로 진행된 자유발언대는 업체당 2~3분씩 진행된 스타트업 소개 시간이다. MCN 플랫폼인 미디어브릿지와, 온라인 재무/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민금융경제연구소, 그리고 문화산업플랫폼인 플러그(plugg) 측이 나와 간단한 회사 소개와 서비스 홍보 시간으로 활용했다.

‘How I invest(나는 어떻게 투자하는가)’=본격적인 행사 시작은 트랜스링크캐피탈코리아(이하 트랜스캐피탈) 허진호 대표가 ‘스타트업은 모르는 투자자의 비밀’이란 주제의 키노트로 열었다. 트랜스캐피탈은 엔젤, 시드, 시리즈 A 같은 다양한 투자 프로그램 중에서 시리즈 A 투자에 주력하는 하는 회사다. 시리즈 A 투자 시기는 스타트업이 실제적인 매출을 내는(변곡점) 시점이다. 보통 이무렵에 본격적인 외부 투자가 이뤄지고 시리즈 A 투자 이후 마케팅 비용의 지출이 늘어나면서 유보금 소진 속도가 빨라진다고. 이때 후속으로 투입되는 자본이 바로 시리즈 B, C, D, E, F… 대표적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Uber)의 경우 시리즈 F까지 투자 유치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시리즈 A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 초기 단계인 엔젤, 시드 투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엔젤 투자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주로 창업자와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 ‘믿고’ 투자 받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흔히 이 단계를 ‘friend&family stage’라고 부른다. 시드 투자는 제품/서비스 개발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계획이 짜여져 있는 상태에서 제품/서비스를 개발 하는데 필요한 자금확보를 위해 외부 투자를 받는 정도의 차이다. 또한 시드 투자와 시리즈 A 사이에 존재하는 시리즈 A 투자 직전의 투자는 ‘프리(pre) A 시리즈’라고 부른다.

스타트업이 투자를 만나는 대표적인 장소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회사의 서비스나 제품을 선보이는 데모데이다. 트랜스캐피탈 역시 이런 데모데이를 통해 투자할 스타트업을 70% 정도 발굴한다. 나머지는 엔젤, 시트 투자자에게 추천을 받거나 제안을 통해 진행한다. 특히 투자자를 통해 추천받은 곳은 이미 필터링이 된 검증된 업체라 투자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투자 검토의 경우 1년에 500개 정도의 업체를 검토하고 실제 미팅이 이뤄지는 곳은 100여개 정도되지만 시리즈 A 투자까지 가는건 5~7개 업체 밖에 안된다.

엔젤, 시드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다고 해서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 콜드콜(cold call)이라는 방식으로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미팅해 투자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이메일을 통해 사업계획서가 오면 반드시 읽어보고 연락해 미팅하는 경우도 무려 20%나 된다고 한다. 일단 적극적으로 움직여라.

투자는 시장, 제품/서비스, 팀의 성공 가능성 순서로 사업을 살펴보고 결정하는 게 보통이다. 시리즈 A를 받기는 어렵지만 시리즈 B 투자부터는 앞서 말한 부분에 대한 검토가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이미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시장 검증이 끝난 상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숫자(금액)에 대한 부분을 좀더 꼼꼼히 많이 보게되고 투자 금액이 높은 만큼 지분율 같은 계약 조건도 덩달아 까다롭게 된다.

허 대표는 투자 미팅 단계에서 ‘투자 대상 업체의 핵심 KPI에 대한 인식 부족과 비즈니스의 핵심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수라고 말한다. 아울러 현실적인 부분인 시장과 매출에 대한 정확한 목표 설정과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빅데이터나 AI 등의 ‘유행 키워드’를 남발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투자자가 무조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진 않겠지만 그 사업에 대해 좀더 ‘의도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0.01%의 성공확률에서 1000억을 점치다=황병선 빅뱅엔젤스 대표는 ‘시드 투자의 모든 것’이란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빅뱅엔젤스의 대표적인 투자 성공 회사는 레진코믹스로 주로 플랫폼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회사다.

‘시드 투자는 누가 받는가? 기업가치 50억 이하의 시리즈 A 투자 유치가 가능한 기업’ 황대표의 시드 투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짧고 명확했다. 그리고 시드 투자 수익율은 평소 많은 질문을 받았던 부분이라 아예 공식을 공개했다. 상당히 복잡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간단한 사칙연산이었다.

수익율=투자금액*성공 확율(투자금 대비 회수 금액)*회수 배수(배당)

원래 수학 공식(?)은 실제 수치를 대입해가며 스스로 공식을 익히는 게 이해가 빠르다. 다시 공식으로 돌아가보자. ‘5년에 20% 수익율’이라면 매년 20%의 수익을 냈다는 이야기이므로 결국 5년간 2배의 수익을 냈다는 뜻이 된다.

스타트업이 시작된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 VC의 원금 회수율은 다음과 같았다. VC가 투자한 돈을 1배 이하로 회수할 확률은 64.8%, 10배 이상 대박을 치고 회수할 확률은 2.5%로 급감한다. 소위 말하는 ‘중박’은 5~10배 정도의 회수율로 전체 투자에서 5.9%에 해당한다.

시드 투자후 5년이내 exit해 성공할 확률은? 황대표 말에 의하면 0.01%다.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10년 이내 상장해서 수익을 낼 확률이 0.01%. 확률로만 따져본다면 정신 나간짓이 분명하다. 그래서 투자가 힘들다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어떤 기업에 투자했는가?라는 물음에 “10년 안에 매출 1000억 달성 가능한 곳”이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일반인에겐 생전에 구경조차 하기 어려워 보이는 천문학적인 수치지만 이 부분이 매우 논리적으로 현실화 된 상태에서 투자자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만 비로소 투자 유치가 가능하다는 것.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레진코믹스를 들었다. 불과 5년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 만화라는 장르는 네이버 웹툰을 통해 모두 공짜로 보고 있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만화를 유료화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사람이 있었는 데 그가 바로 현재 레직엔터테인먼트의 한희성 대표다. 당시 주력 분야가 미디어 인더스트리였고 퍼블리싱 분야의 IP 비즈니스 가능성을 믿고 투자가 가능했다고. 실제로 마블(MARVEL)이 이런 수순을 그대로 따르는 대표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물론 기술이나 아이디어, 시장만으로 성공을 점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팀이나 사람보고 투자한다”라는 이 업계의 정설은 허언이 아니었다. 소규모 리모델링 시장을 공략하는 집닥은 공사비 1500만원 이하의 시장만을 타깃으로 노리는 곳이다. 전체 인테리어 시장에서 따져본다면 금액면에서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파이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현재는 시리즈A와 M&A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성장했다. 심지어 시드 투자 단계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세 번이나 바꿨음에도 시리즈 A, B 투자를 받는 곳도 있다.

“시드 투자란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이다”. 빅뱅엔젤스는 플랫폼 스타트업에 투자해 1000억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게 목표다. 비록 그들의 성공 확률은 0.01%지만 함께 꽃길만 걷겠다는 얘기다.

그럼 VC는 어디에 투자할까? 이미 답이 나왔다. IPO나 M&A가 될 만한 회사여야만 한다는 것. 결국 매출 1000억 달성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바꿀 수 있는 회사다.

성공적인 투자 유치를 위한 11가지 꿀팁=다음은 박영욱 더벤처스 디렉터의 ‘액셀러레이터가 말하는 액셀러레이션과 투자’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먼저 예로 든 성공 사례는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으로 성공한 비키(viki)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난 2007년 설립해 글로벌 방문자수는 2500만명에 도달했고 실리콘밸리 VC로 다양한 투자를 받아 성장해오다 2013년 일본 라쿠텐에 약 2200억원에 매각된 회사다. 그리고 2명의 대표가 한국으로 돌아와 차린 액셀러레이션이 바로 더벤처스다.

더벤처스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회사다. 일반적인 투자사와 차이점이 있다면 단순한 재무 투자에서 벗어나 다각적 지원을 하며 코파운더처럼 함께 하는 것. 지금까지 40개 회사를 발굴해 셀잇, 파크히어(park here) 같은 6개 회사를 엑시트(투자금 회수)하는데 성공했다.

“스타트업에게 액셀러레이터란 일종의 코파운더이자 터놓고 말하기 힘든 이야기도 속시원이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파트너다.”

이밖에 국내 액셀러레이션 사례 중 두 가지를 들었는데 역경매를 통해 좋은 가격에 중고차를 팔 수 있는 PRND의 ‘헤이딜러’와 창업자 단 둘이 iOS용 카메라 앱을 통해 불과 6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100만회라는 의미있는 수치를 만들어낸 팬타그램의 ‘9cam’에 대한 이야기였다.

박영욱 디렉터는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기위해 염두해야 할 부분이나 팁을 총 11가지로 이야기했다. 요점만 정리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Tip 01.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 “이 아이템은 성공할까요?” 아이템만 보고 투자검토가 가능하다면 워렌버핏보다 투자 수익률이 높을 것.
Tip 02. KPI와 투자계획이 중요. 특히 구체화 계획이 매우 중요하다.
Tip 03. 투자 제안서의 목적은 투자자에게 이 회사의 비전과 방향에 푹 빠지도록 설득하는 데 있다. 아이템/사업/영업 제안서가 절대 아니다. 사업 계획이 있어야 한다. 사업 소개랑 구분을 해라. 분명히 다르다.
Tip 04. 투자 제안서는 무엇이 들어가야 할까요? “왜 투자를 해야하지?” “얼마나 투자가 필요하지?” 대한 명확한 이유와 근거
Tip 05. cold mail을 보내는데 주저하지 마라. 하지만 멀티 메일로 보내지마라. 수신자 확인할 것. 이건 기본적인 예의/성의의 문제다.
Tip 06. “이 팀은 무엇에 집중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가” 액셀러레이터가 가장 눈여겨 보는 포인트. 당장 회사에 필요한 것 바꿔야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
Tip 07. 투자 심사 과정의 내부 프로세스를 알면 더욱 공략이 쉬울 수 있다. 공부해라.
Tip 08. 지인 투자가 콜드메일보다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세스는 지켜라. 전화로는 곤란하다.
Tip 09. “정말 친하니까 투자 꼭 해줄게” 이런일은 없다. 상상도 하지마라.
Tip 10. 결국, 경영을 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특히 초기에는 경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Tip 11. “경영하면서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친구(액셀러레이터) 한 명이 더 생긴 기분”

실패에서 답을 찾는 얄미운 창업자가 되자=마치 인류학 강의의 첫 시간처럼 인류의 진화 과정을 담은 슬라이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거의 동시대를 살아간 두 종족. 네안데르탈렌시스가 호모사피엔스 중에서 현 인류가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지혜’에 있다고 말한다. 네안데르탈렌시스가 호모사피엔스 보다 뇌 용량이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본능이 아닌 지혜에 의존해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캡스톤파트너스의 송은강 대표는 그런 팀(스타트업)을 찾고 있었다.

현실적인 내용은 지금부터다. VC는 남의 돈으로 투자한다(=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엔젤투자자는 자기돈을 투자한다(자기 돈으로 할 수 있다). VC가 내 마음대로 투자한다고 말하면 그건 ‘사기’다. 투자한 사람과의 약속대로 써야한다. 그리고 VC 역시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 피해갈 틈이 있어야 한다. 마음대로 투자할 수 없는 이유다.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 사회에서 간단한 힘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투자를 받기전에 무수한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모든 스타트업은 실패를 전제해야 한다” 150개 투자회사가 있다는 건 150명의 자식이 있다는 뜻. 물론 그 중 20명 정도의 자식은 응급실에 갔다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그 다음 슬라이드에 뜬 문구는 ’92%’. 흔히 ‘스티브잡스’ 스타일의 프리젠테이션은 프리젠터의 화술에 의해 성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곧이어 나올 설명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92%는 창업 3년 후 패업할 확률이다. 글로벌 대상이 아니라 국내 대상의 비즈니스에서 기본적으로 망할 확률이 92%. 그렇다면 나머지 8%는 성공일까? 그것도 아니란다. 성공엔 격차와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송대표는 ‘얄미운 창업자가 되라’고 말한다. “창업 후 모두 다 잘되란 법이 없다. 투자금 다 까먹더라도 안되면 회사를 접어야지 어쩔 수 있나?” 무엇보다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중요하지만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은 만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신 실패한 사람이라도 잘 만날 수 있다면 최소 1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효율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돈을 적게 쓰는 사람이 훨씬 믿음이 가는 법이다. 일단 투자하려는 기업을 오래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된다. 아울러 펀딩 준비는 돈 떨어지기 1년 전, 최소 6개월 전에 끝내라고 말한다. 보통 회사가 다급해지면 협상력을 잃기 마련이다. 일단 VC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저 팀이 내 돈을 가져가서 정말 효율적으로 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창업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단 기관투자자도 다르지 않았다. “조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회사가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 만큼 누구와 어떻게 일하느냐도 중요하다”는 것. 사업 아이템은 바뀔지언정 조직/팀은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곳의 성공신화, 그리고 매출 1000억. 스타트업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찰 단어인 IPO, M&A 등의 엑시트(exit). 연단에 오른 투자자들은 저마다 사람, 팀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지만. 결국 그 속에 숨은 뜻은 앞서 말한 가슴 벅차는 단어를 실현할 수 있는 곳에만 투자하겠다는 의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투자자는 바보가 아니다. 더구나 성공확률 0.01%에 돈을 거는 도박사는 더더욱 아니다. 한마디로 ‘될 성 부른 떡잎에만 투자를 한다.’ 하지만 기존에 레퍼런스가 전무한 신생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에서 희망적인 수치를 찾아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투자를 받기위해 사업을 하지 마세요. 투자없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겁니다” 투자자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조금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강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었다. 스타트업 스스로 투자라는 달콤한 단어에 중독되기 보다 투자자를 현혹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장 판단과 장기적인 계획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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