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인정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자신이 쓴 웹소설을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정부에 등급 심의를 받아야 한다. 수수료는 2만원에서 16만원 대다. 옆 친구에게 자신의 창작물을 보여줄 때 심의를 받고 비용을 지불을 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유튜브에서 G식백과 채널을 운영하는 김성회 대표가 최근 논란이 된 플래시 365 서비스 중단 사태를 꼬집었다.

지난 2월, 청소년 창작게임 공유 플랫폼 플래시 365가 중지됐다. 심의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을 유통하는 건 불법이라는 이유에서다. 문제가 불거지자 게임믈관리위원회는 비영리 게임에 대해 등급 수수료를 면제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24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의 집에서 열린 2019 인디게임포럼에서는 청소년과 게임개발자의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이 날 발표는 ‘밥’을 소재로 규제 때문에 눈물 젖은 밥을 먹어야 했던 게임 산업이 찬밥 신세를 벗어나 푸짐한 밥상을 차리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꾸려졌다.

규제에 갇힌 게임 산업.. 눈물젖은 밥=발제에 나선 김도형 버프스튜디오 대표는 “비영리 게임에 한해 수수료를 면제한다는 방침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자유로운 게임 창작문화 조성을 위해서는 영리성 여부를 떠나 자율등급제와 사후 심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 개발 1.5세대로 활약한 김 대표는 성공한 게임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올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검은사막, 몬스터길들이기, 팡야 등 국내 유수 게임을 예로 들었다. 이들 게임 개발자의 공통점은 PC통신 태동기부터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 게임 제작 동아리에서 활동했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먼저 실행해본 경험이 성공의 밑거름이 된 셈”이라며 “1990년대만 해도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공개할 수 있었지만 20년 후인 현재는 게임 개발 환경이 오히려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게임 역시 메시지를 담는 미디어로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배포돼야 한다”며 “게임 산업의 싹을 자르는 규제 대신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역설했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게임 산업을 규율하는 법과 규제 때문에 게임 업계가 눈물 젖은 밥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 21조 등급분류 조항이 현 사태의 발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동법 제 21조 1항에 규정된 ‘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게 될 목적’ 해석 시 ‘이용에 제공하게 될’이라는 부분이 포괄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불법적 요소를 지닌 게임을 배제한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지만 산업 전반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결과로 이어져 게임 산업 발목을 잡는다는 설명이다.

동법 22조에 규정된 등급분류 거부도 검열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검열이 제도적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검열의 성격을 띠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헌법상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검열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만큼 헌법소원, 위헌법률제청로 위헌 소지를 다투고 입법적으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설득과 홍보를 통한 인식 개선도 촉구했다. 김 변호사는 “국가 산업 미래를 책임지는 콘텐츠임에도 정치적 쟁점이나 이해 부족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며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한 입법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 관계 당국에 설득과 홍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게임 산업은 미래 산업 푸짐한 밥상 차릴 것=허양일 RFN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해왔지만 찬밥 신세로 면치 못하고 있는 게임 산업에 대해 근본적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게임 산업은 2018년 기준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매출 13조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이 열풍이라고 하지만 매출 규모로 보면 게임 산업의 절반에 그친다. 그럼에도 게임 산업 관련 지원은 2018년도 35%, 문체부 전체 관련 예산은 14% 감소했다.

게임 산업 자체 성장성도 크지만 전체 산업 관점에서 보면 ‘찬밥’으로 인식되기엔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허 대표는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로 각광받는 AR, VR, 블록체인 관련 기술의 모태가 된 건 게임 산업”이라며 “넷플릭스에 할용하고 있는 전송 기술 또한 게임 관련 콘텐츠를 대용량 데이터로 전송하는 기술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게임 산업의 성장성에 비해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하다 보니 유망 게임 스타트업을 찾는데도 한계가 있다. 스타트업을 발굴, 액셀러레이팅 하는 동안 게임 산업 인재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는 게 허 대표 설명이다.

허 대표는 “단편적인 규제 통제 관점이 중요한게 아니라 실제 시장에서 인정받고 팔리고 있는 상품이자 산업이라는 존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게임 산업을 색안경 끼고 바라볼 때 미래 성장 동력 또한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 대표는 테슬라가 자동차 내부에 게임을 탑재한 사례를 들었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면 양방향 인터렉티브 미디어 수요가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고 양방향 인터렉티브 미디어의 대표적인 장르는 게임이다. 비단 자율주행차 뿐 아니라 미래 기술 기반이 되는 게임 산업에 대한 인식이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한 미온적인 대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게임 산업을 규제와 통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게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허 대표는 “게임 산업이 규제와 부정적인 인식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지만 게임이 교육적, 산업적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정부, 산업 관계자가 지금이라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도 게임 산업에 대한 인식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김성회 G식백과 대표는 “게임은 지금 시대의 놀이 문화로 봐야 한다며 나쁜 것으로 낙인찍고 검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짚었다. 박훈 주전자닷컴 대표는 “게임산업은 지난 20년 간 자생적으로 성장해왔지만 사회적 병폐로 바라보는 인식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방향성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할 때”라며 “최근 불거진 문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만큼 업계 개발자와 구성원이 인식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의견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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