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aS 강국 핀란드 “민간이 먼저 가면 정부는 따라간다”

“왜 핀란드를 MaaS 강국이라고 하나” 요우니 살로넨 비즈니스 핀란드 스마트 모빌리티 시니어 어드바이저가 자문했다. 비즈니스 핀란드는 핀란드 대표적인 혁신 기관이자 경제부 산하 투자 기관이다. 2018년 1월 기술혁신지원기관 TEKES와 수출 투자 관광진흥원 핀프로가 합병해 탄생했다. 요우니 어드바이저는 핀란드 정부 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을 꼽았다. 이동수단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로 이용하는 MaaS가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길을 열어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요우니 어드바이저가 밝힌 정부의 역할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사업 기회를 폭넓게 보장하는 데 있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 법안을 정비하고 민간과 새로운 협업 모델을 만드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요우니 어드바이저는 “핀란드 내 혁신 생태계가 민간에서부터 태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노키아의 몰락을 배경으로 한다. 2004년 핀란드 GDP 4%를 차지하던 노키아가 2012년 1%대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해졌다. 알토대학교를 중심으로 민간 중심 창업 생태계가 싹 트면서 밑에서부터의 혁신 성장 움직임이 생겨난 것도 이 때다. 당시 수퍼셀과 로비오 같은 핀란드 내 스타트업의 성공은 도전과 혁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민간이 먼저 시작하면 정부가 따라간다” 정부는 재정 지원은 물론 법안 개정을 통해 새로운 실험의 장을 열어뒀다. 일례로 자율주행차 관련 법안은 헬싱키 도로 내 자율주행 실험을 앞두고 4단계에서 5단계로 완화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이를 기점으로 자율주행버스가 실제 도로 위를 달리면서 크고 작은 실험이 진행됐다. 자율주행버스 로보버스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에바 메트로폴리아 매니저는 “2015년 끼비스토 지역에서 ‘시티모빌2’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테스트를 허용하기 위해 법안을 바꿨다”며 “자율주행 버스 실험 진행된 이래 2016년 소흐요아 프로젝트와 같이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현재 핀란드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자율주행을 비롯한 모빌리티 서비스는 정부 부처와 민간 기업이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핀란드교통국, 핀란드 기술원(VTT)와 민간 기업 스노우박스가 공동 진행한 오로라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오로라 프로젝트는 핀란드 내 무오니오부터 파흐토헨까지 이르는 E8 고속도로 10km 구간에 마련해 놓은 테스트베드다. 해당 구간은 1년 중 186일이 겨울 기후에 속해 악천후 상황에서도 자율주행을 테스트하기 알맞은 지역이다. 오로라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레이야 비나넨 스노우박스 대표가 “이곳에서 성공하면 다른 곳에서도 다 성공한다고 볼 서 있다”고 표현할 만큼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테스트를 구현할 수 있다.

레이야 비나넨 대표는 오로라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핀란드는 자유로운 규제환경을 자랑한다”고 강조했다. 눈길이 쌓인 일반 도로에서 자율주행 차량 테스트가 가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핀란드교통국은 공공도로인 E8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테스트 환경으로 내줬다. 기업은 진행 과정과 결과를 정부와 투명하게 공유한다. 프로젝트에서 스노우박스는 도로 진동과 무게, 가속도 측정이 가능한 센서를 200여 개 부착한 후 데이터를 수집한 후 기후 데이터를 비롯한 주행데이터를 핀란드 교통국에 전한다. 핀란드 교통국은 이를 토대로 기후 환경에 적합한 교통 기준을 만든다.

“허가 신청부터 실증 착수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 핀란드 끼비꼬와 깔라사따마 지역에서 운행 중인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도 당국의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에드 매니저의 설명에 따르면 핀란드 교통국과 협력을 통해 한 달 안에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테스트 계획을 당국에 제출하고 교통국이 요구하는 특정 질문에 답하면 된다. 자동차 보험과 같은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실험을 진행하는 구성원이 회사에 등록되어 있으면 별다른 문제 없이 허가가 나온다는 설명이다. 테스트 신청 후 허가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한 달. 완성 제조차 기준에 맞춰 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1년이 소요된다.

“정부 허가는 어떻게 받았나요?” “신청하면 허가가 나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 모빌리티 팀이 핀란드 관계자와 만났을 때 들을 수 있는 답은 대동소이했다. 깔라스타마 지역에서 운행하는 자율주행버스 로보버스를 탑승했을 당시 국내 모빌리티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미 허가라는 큰 산을 넘고 시작하니 국내와는 환경부터 다르다”고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국내 기업의 경우 임시운행 허가에 걸리는 시간은 약 1년, 실증에 이용되는 차는 프랑스 자율주행차 ‘나브야’로 차종은 같지만 국내의 경우 완성차 기준으로 보호 장치를 추가 마련해야 허가가 난다.

물론 국내 환경과의 단순 비교는 어렵다. 자율주행 테스트베드가 마련된 헬싱키 일대는 시내라고 해도 서울 도심보다 교통 환경이 복잡하지 않다. 도로 내 규정 속도는 40-50km/h로 국내와는 상이한 환경이다. 남북한의 1.5배 넓이에 550만이 살고 있는 특성상 규제 대상을 일일이 정하고 감시할만한 상황도 아니다. 법규 자체가 포괄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규제가 느슨한대신 사회 전반에 깔린 믿음은 견고하다. 버스를 제외한 교통 수단 이용 시 일일이 검표를 거치지 않는 것은 단적인 예다. 자율주행 원천기술 개발사 김에서 활동하는 박은찬 로봇엔지니어는 “신뢰가 사회 비용을 줄이는 구조”라고 말한다. 핀란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스타트업 비자를 받은 박솔잎 포어씽크 COO는 “핀란드 검열 체계는 신뢰”라고 짚었다. 신뢰를 유지하면 검사와 검증 공정이 줄지만 대신 신뢰를 져버리는 순간 가차 없이 ‘아웃’이라는 설명이다. 박 COO는 또한 “한국의 경우 규제가 많다기보다는 회색지대에 걸쳐있는 규제가 많아 혼선이 온다”며 “핀란드의 경우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작동하다보니 우선 해보고 그 다음에 고쳐나가자는 식의 태도를 견지한다. 일단 해보라고 한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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