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계약, 독소조항과 무효의 경계

 

페이스북 성장기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왈도 세브린은 회사가 급성장하는 도중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된다. 투자가 진행되면서 본인의 지분이 30%대에서 0.03%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지분율 보장 약속은 복잡한 계약서에서 교묘하게 희석되었다. 두꺼운 투자계약서 속 독소조항을 눈치채지 못하고 사인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무는 숲에 숨기라.”는 격언을 이렇게 바꾸어 써볼 수 있겠다. “독소조항은 두꺼운 계약서 속에 숨기라.” 사인한 후 뒤늦게 알아 채더라도, 이미 날인된 계약서의 효력은 쉽게 뒤집을 수 없다(법조계에서는 ‘처분문서’의 증명력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본인이 무슨 내용의 약속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창업자들이 “바빠서, 귀찮아서, 어려워서” 간과한다. 창업한 회사가 잘 안되면 크게 상관이 없다. 회사가 잘되는 경우가 문제다. 섣불리 날인한 계약서의 파급효과는 수십, 수백억 원의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 

다만, 최근 판례에서 투자계약서상 중요 조항들을 무효 판단하는 여러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본고에서는 계약실무상 이른바 독소조항으로 판단되는 사례나 구조들을 살펴보고 검토한다. 이와 함께 ‘무효’에 이를 수 있는 조항들도 함께 검토한다(단, “투자자 사전동의조항 무효” 관련해서는 이전 칼럼에서 상세히 다뤘으므로 이하에서 논의를 생략한다).

 

계약당사자: 주요주주 혼자 ‘덤터기’ 쓸 수 있으니 유의해야

누구나 유망 스타트업으로 꼽을 만한 모 벤처 창업자 분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속 200km로 달리는 열차에 타고 있는데, 내릴 수가 없는 기분입니다.” 투자계약이 매우 복잡하고, 회사보다는 오히려 대주주 개인을 옭아매는 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투자계약서에서는 보통 “이해관계인” 또는 “주요주주”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창업멤버가 계약당사자로 등장한다. 보통 최대주주만을 넣는데, 가끔 지분율이 낮거나 핵심 임원이 아닌 직원들도 이해관계인에 포함시키자고 하는 투자자가 있다. 이런 투자자는 일단 경계하시길 바란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자기의 투자금 회수 담보를 받고 싶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많은 투자계약서들이 투자금 회수를 위해, 이해관계인이나 주요주주 개인에게 회사에 대한 투자금 회수 책임을 연대하여 지도록 하고 있다.

투자금 회수 조항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i) 회사 자체에 대한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환전환우선주로 발행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는 회사가 지는 상환책임이므로, 회사 자체의 자산에 한정된다. 투자자들은 추가하여, (ii) 주주 개인에 대하여도 사실상 투자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옵션(option) 조항들을 넣는다. 주로 회사 또는 주요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여 투자자 소유 주식을 강제로 사 가도록 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는데, 먼저 (i) 회사에게 강제로 매각하는 취지의 약정은 (최근의 판례 동향에 비추어) 무효로 판단되거나, 자기주식 취득 요건(배당가능이익 내에서만 취득 가능) 때문에 제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반면 (ii) 개인(주요주주)에 대한 강제매각은 (최근 판례 동향에도 불구하고) 추후에도 유효하다고 판단될 여지가 높다. 해당 조항을 통하여 투자자-주요주주 개인 간에 일종의 매매예약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조항(주식매수청구권)을 넣는 경우, 보통 투자자는 “회사와 대표님 모두가 당사자여서, 회사가 사가면 되고, 대표님이 강제로 사 가실 일은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해당 조항이 문제될 상황이 되면, 주요주주 개인이 혼자 양수도대금을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주요주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즉, 해당 주식을 내가 사오고 싶은 의사가 있던지 없던지) 강제로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되고, 거액의 양수도대금(보통 투자금+a)을 개인이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투자는 원래 리스크를 감수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최근의 벤처기업 투자실무는 이러한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개선되어야 할 부분으로 생각된다(이전 칼럼에서도 언급하였듯, 일정 규모 이하의 벤처기업에 대하여는 정부 차원에서 표준 투자계약서를 권고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참고로 계약서 조항을 따지고 들면 투자자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재무적 투자자(FI)의 경우 “관행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고, 실제 청구할 일은 없으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전략적 투자자(SI)의 경우 “신뢰관계에 기반하므로 소송할 일이 없다, 대표님과 함께 하고 싶어서 체결하는 것이다”는 등의 말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법적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초에 계약서는 법적인 강제력을 부여하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실제 청구할 일이 없으면 계약서를 안 쓰면 될 일이다). 물론 투자자들 또한 분쟁이나 소송으로 가는 것을 꺼려하는 편이므로, 완전한 거짓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순 있다. 다만, 그 말의 정확한 의미는 “소송으로 강제할 수 있지만, 굳이 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니, 그 의미를 분명히 인지하고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무는 숲 속에, 독소조항은 계약조항 속에: 인용조항과 용어의 함정

계약서를 보면 “~조를 준용한다”, “~에 의한다”는 표현 등으로 내용이 아닌 계약 조항을 인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법 기술적으로 계약서의 효율과 경제성을 위한 것이지만, 때때로 중요 사항을 숨기는 복잡한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법률용어의 특성에도 유의해야 한다 “제1조 내지 제8조”라는 표현은 얼핏 보면 제1조와 제8조만을 칭하는 것 같지만, 실제 법률적으로는 “제1조부터 제8조까지” 모든 조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라는 표현은 착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 용어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관리의무’를 일컫는다. “고의 또는 과실”은 고의, 경과실, 중과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인 반면, “고의 또는 중과실”은 경과실은 제외하고 고의와 중과실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법률용어 특성상 일반적인 언어표현과 다소 차이나는 것들이 있으므로, 중요 계약이라면 가급적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모든 조항을 꼼꼼히 짚어보며 특이한 단어들에 대해서는 검색이라도 한 번 해 보는 것을 권고한다.

 

손해배상: 위약금, 위약벌 구분 및 횟수에 따른 가산 유의

투자계약의 특정 조항 위반시, 위반할 때마다 위약벌을 매기는 경우가 있다. 기존에는 주로 투자자의 사전동의권이나 경영사항 보고 위반시, 제3자에 대한 처분제한 위반시 (실제 발생한 손해를 입증하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위약벌을 넣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칼럼에서 상술하였듯 (대법원 판단을 기다려 보아야 겠지만) 투자자 사전동의권은 서울고등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면서, 위반시의 위약벌 조항도 모두 무효가 되었다. 위약벌은 이러한 경우 외에도 금액이 과한 경우 법원에서 그 자체가 무효로 판단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그 금액이 너무 지나치지 않고 적정(?)한 경우에는 유효로 인정될 수 있다. 이는 벌금과 같은 것으로 손해배상과 별도로 부과되는 것이며, 계약 문언에 따라 위반 횟수별로 계속 부과될 수도 있는 치명적 조항이다. 따라서 ‘위약벌’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조심하시길 바란다. 

한편 ‘위약금’은 보통 손해배상액을 일정 금액으로 예정하여 두는 금액이다. 금액이 과하면 법원에서 조정될 여지가 없진 않지만, 통상적으로 그대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해당 예정액이 적정한지 등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위약금’이라는 명칭으로 들어가 있어도 실질적으로 ‘위약벌’으로 판단되는 경우도 있어 유의하여야 한다.

 

마치며

‘독소조항’이란 어감 때문인지 일반인들에게도 강렬한 표현인 듯 하다. 계약서 자문을 맡기는 많은 대표님들이 “독소조항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다만, 법 기술적으로 조항 자체로 ‘독소조항’인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 사업과 당사자간 합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문제가 있는 조항인지 감별할 수 있다. 대표님들은 사업은 잘 알지만 법을 몰라서, 변호사들은 법은 잘 알지만 사업을 몰라서 놓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대표적인 것들로서, 실제 계약실무에서 불리한 조항의 형태나 표현은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다.

따라서 만약 계약서 법률자문을 받으려는 경우라면, 계약서상 사업에 대해 잘 알거나, 적어도 알려는 노력을 하는 변호사를 찾아 자문을 받길 권고한다. 그래야 이른바 ‘독소조항’을 피할 수 있고, (본인 입장에서는) 무효로 판단되지 않는 범위에서 ‘독소조항’을 잘 숨겨서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법률자문을 받기 어려운 경우라도, 적어도 계약서 전체를 한 단어씩 꼼꼼히 읽어보고, 궁금한 것을 상대방에게 해명하는 방식으로라도 이해하고 체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내가 ‘벗어나기 어려운 약속’을 강제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인지 몰랐다’고 후회하시는 의뢰인들이 매우 많다. 적어도 본인이 하는 약속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인지하고 나서 ‘날인’이나 ‘사인’을 하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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