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게 대기업 특허 전략은 해롭다

이 글은 위포커스 특허법률사무소 김성현 변리사의 기고문입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양질의 콘텐츠를 기고문 형태로 공유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벤처스퀘어 에디터 팀 editor@venturesquare.net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스타트업은 스타트업다워야 한다. 스타트업은 스타트업에 적합한 특허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기업 특허 전략은 스타트업에게 있어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다. 오히려 해롭다. 그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것은 ‘특허 포트폴리오’ 전략이다.

대기업 특허 포트폴리오는 강력하고 화려하다. 그중에는 핵심기술 특허, 제품(상용화) 특허 말고도 소위 미래기술에 대한 특허의 건수도 많다. 필자는 10년 전후로 실현 가능한 기술을 미래기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도 특허를 받을 수 있냐고? 특허는 제품이 아니라 기술 사상(idea)에 대해서 받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기업에서는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면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면서 이를 독려한다. 대기업의 기본적인 경영전략은 ‘문어발 확장’이라 불리는 사업 다각화이다. 그들은 특허에도 문어발 시스템을 적용한다.

삼성, 엘지,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의 국내외 대기업과 빅테크의 특허를 분석해서 곧 이런 제품이 출시될 거라 전망하는 기사들이 있다. 돌돌 말려 있는 디스플레이가 자동으로 펼쳐지면서 화면이 확대되는 ‘슬라이드 스마트폰’을 조만간 볼 수 있을 것이라 하면서 기대감을 선사하는 기사들 말이다. 이 기사의 주인공은 애플이었다. 그렇다면 애플은 이런 제품을 언제쯤 만들 수 있을까?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정작 폴더블 스마트폰도 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미래기술 특허 건수는 적지 않다. 아마존의 드론 배송 특허는 몇 개나 될까? 약 10년 전부터 수십 개의 특허를 받아 두었다. 공중 물류 센터 역할을 하는 대형 비행선을 띄워서 다수의 드론 배송을 하겠다는 도면 이미지는 꽤 유명하다. 그러나 현실 속 아마존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시작한 드론 배송 시범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존의 첫 드론 특허 확보 시기는 2015년 전후로 보인다.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구글은 2014년 사물인터넷 기술과 특허 선점을 위해서 네스트랩스를 인수한 바 있다. 한화로 3조가 넘는 금액이었다. 구글이 보기에 네스트랩스가 가진 100여 건의 미래기술 특허의 가치는 컸으리라. 최근 소식을 찾아보았다. 구글은 OO 기업과의 특허 분쟁에 패하여 ‘동기화된 여러 대의 스피커의 볼륨을 그룹화하여 조절하는 기능’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미래가 아닌 눈앞에 놓여 있는 자신의 대표 제품의 기능에 대해서는 특허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공격을 당한 것이다.

특허맵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특허 현황을 지도처럼 분석하는 방법이다. 특허맵을 이용하면, 어느 분야, 어느 제품, 어느 기술에 대하여 어떤 기업과 연구자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특허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방법론이 IP-R&D이다. 미리 경쟁사 등의 특허를 분석해서 연구개발 방향을 설정하고, 연구개발 단계부터 조기에 특허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듣기 좋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구조다.

특허도 산업, 시장, 기술 등 다양한 마켓 센싱 정보 중 하나이기 때문에 특허 동향을 살피는 것는 분명 효과적이다. 문제는 특허를 ‘개발’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특허맵 상에서 특허가 없거나 적은 이른바 공백 영역을 대상으로 특허를 만드는 것이다. 제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기에 통상적으로 제품화 검증과 시장 검증은 생략한 채로 진행된다. 그러나 제품으로 만들어질 수 없거나 시장의 수요가 없는 아이디어는 가치가 없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대상으로 받아둔 특허도 당연히 가치가 없다. 그게 몇 건이든 말이다. 밀실에서 탁상공론으로 만든 특허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스타트업에게는 시간, 비용, 노력 등 모든 면에서 손해일뿐이다.

스타트업이 실패하고 망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시장 수요가 없는 즉 ‘시장과 맞지 않는 제품’ 때문이다. 그런데 왜 시장과 무관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특허를 개발하고, 모두가 말리는 길을 가려는 것인가? 아이디어 강화는 온전히 시장의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맹목적으로 특허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 뱀의 다리를 그려 넣는 실책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날이 올 거라고? 대기업처럼 10년, 20년 버틸 자금과 자원이 있다는 소리인가? 설령 자금과 자원이 충분하다 한들 현재가 아니라 먼 미래에 성공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것은 ‘문어발’이 아니라 ‘집중’이다. 미래기술을 꿈 꿀 시간에 차라리 한 시간이라도 더 자사 제품(기획)을 들여다보고 놓친 부분은 없는지 살피는 것을 추천한다. 벤처캐피탈은 언제 실현시킬지도 모르는 미래기술 특허 보유 여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기술평가기관도 기업의 주력 사업 혹은 제품과 관계된 특허 보유 여부와 그 권리 범위, 강도 등을 평가할 뿐이다. 스타트업에게 미래기술 특허는 ‘낭비’이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특허 전략은 유니콘이 되고 나서 시작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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