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기술인문학 이야기(5)] 끌어당기기와 밀어내기 2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산업시대에서 “밀어내기(push)”로 표현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사회로 진행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에서는 표준교과과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이미 정해진 순서에 따른 정보를 전달하고, 나이와 학년이 진행됨에 따라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는다. 비즈니스에서는 자동화된 공장과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통해 정해진 시간 내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전달해야 한다. 주로 공급이 주도하면서 모든 것을 끌고 나가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밀어내기” 패러다임과는 반대되는 “끌어당기기” 패러다임은 어떤 것일까? 수요에 기반을 두고 필요성이 있다면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원을 활용해서 대응을 하는 것이 “끌어당기기” 패러다임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모바일, 소셜 웹 등의 새로운 환경은 이런 “밀어내기”와 “끌어당기기” 패러다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지난 포스트에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적용영역을 좀더 넓혀보도록 하자.

미디어 제작 및 편집 환경의 변화

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는 단지 접근과 배포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제는 미디어의 제작에도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세대에 비해 미디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들을 기본적인 소양으로 잘 익히고 있어서, 기초적인 콘텐츠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능력들이 매우 뛰어나다. 예를 들어, 과거라면 음악을 듣기만 했지만, 최근의 젊은이들은 디지털 음원을 다운로드 받고, 이를 자신들이 직접 리믹스를 해서 다양한 형태의 곡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리믹스 기술은 특히 클럽의 DJ들에게는 필수적인 역량이기도 하고, 변화의 물결을 타고 다양한 디지털 오디오 편집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나 장비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이 직접 미디어가 되기 위한 형태의 저작이 늘고 있다. 블로그가 일반화되면서 누구나 쉽게 글을 써고, 외부에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발행”을 하기가 쉬워졌고, 여기에 자연스럽게 음악, 사진, 비디오 등도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자신 만의 미디어를 보다 풍부하게 꾸미고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사진과 비디오를 찍고 이를 기반으로 간단히 공유하는 텀블러(Tumblr)와 같은 비교적 작은 크기의 미니 블로그 서비스도 인기다. 스마트 폰에서 사진과 비디오를 찍고, 이를 적당하게 간단히 편집 및 조작을 한 뒤에 올리기가 매우 쉬워지면서, 누구나 자신 만의 미디어를 가지고 이를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일부 얼리어답터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미디어를 생산하는 것은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영토가 아니다. 특히 재능있는 프로암(ProAm, 프로같은 아마추어)들의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이들은 언제라도 기존의 전문가들을 제치고 이슈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능력들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편집의 영역도 더 이상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블로거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다양한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를 잘 녹여내면서 미디어를 만들고 있다. 특히 팀 블로그나 블로그 네트워크를 통해 기업적인 형태로 진화하는 블로거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 뿐인가? 댓글을 통해서 블로그의 글은 종종 원래 썼던 글보다 훨씬 훌륭한 댓글들이 모이면서 그 자체로 커다란 이슈를 만들거나,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증폭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부의 블로거들은 이렇게 편집자로서의 역할과 좋은 정보나 지식의 원천을 활용해서 멋지게 포장하고, 자신들의 유통파워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과거와 같이 단편적인 대중매체의 유통체계를 단숨에 뛰어넘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형태의 새로운 서비스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소셜과 모바일 환경이 융성하면서 자연스러운 진화를 거듭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에서도 먹힐까?

이와 같은 변화를 이야기할 때 미디어를 먼저 이야기하면, “미디어”는 본질적으로 디지털화가 쉽고, 이를 통해 간단히 인터넷으로 전송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른 산업에 이런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많이 나온다. 아톰이 지배하는 물리적인 제품들을 인터넷을 통해 배포하거나 변환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일정 정도는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미 다른 여러 산업에서도 변화는 시작되었다. 먼저 공급자망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 제품혁신과 고객관계관리(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라는 경영의 가장 기초적인 기술의 혁신으로 변화를 선도하는 곳들이 있다. 대표적인 회사가 중국의 Li & Fung 이다. 이 회사에서는 의류 디자이너가 전 세계의 소매상 들에게 생산해서 유통할 제품의 공급망을 매우 유연하고도 최적화해서 디자인을 하고 생산하도록 할 수 있다. 2005년 기준으로 이들은 무려 37개 국가의 7,500개의 비즈니스 파트너와 일을 하였는데, 다양한 의류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파트너를 쉽게 찾아서 이들이 디자이너의 의도에 맞는 의류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기업들의 경우에는 소수의 공급망에 의존해서 대량으로 생산을 하였지만, 전 세계의 다양한 수요와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Li & Fung이 구축한 플랫폼은 물론 시스템 자체도 훌륭하지만, 전 세계의 수천 곳이 넘는 파트너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해왔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들은 파트너 네트워크를 적절히 활용하여 이들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지도, 반대로 지나치게 독립적이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의 균형을 유지한다. 파트너 네트워크에 들어와 있는 파트너들 역시 Li & Fung에 지나치게 의존적이지 않다. 이들은 서로 균형잡힌 협업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미디어 산업과 같은 급격한 혁신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끌어당기기 모델”이 가지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역학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와 협업관계를 중요시하는 트렌드는 점점 다른 오프라인 산업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xverges/4232239101/
… (후속 편에 계속) …

참고자료: John Hagel & John Seely Brown, From Push to Pull: Emerging Models for Mobilizing Resources (2005)

글 : 정지훈
출처 : http://health20.kr/2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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