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님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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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얼마나 많은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느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애플이 맥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IBM은 연구 개발비로 애플보다 최소 100배 이상의 돈을 투자했습니다. 혁신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혁신은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에 따라서 얼마나 결과를 얻느냐에 달렸습니다.

– 1998년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 그로 인해 인류는 자연으로 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불을 이용해 처음으로 문명을 만들어갔습니다. 현대의 문명은 PC라는 불로서 시작했습니다. PC는 인류의 생활을 모두 바꾸었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했습니다.
 
그전까지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없었던 컴퓨터를 대중화 시킨 Apple I , GUI의 대명사 애플 매킨토시, 최초의 장편 디지털 영화 토이스토리, 음악의 혁명인 Itunes와 아이팟,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셀 수도 없습니다.

그의 일생은 프로메테우스의 현신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님을 한번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애플이 발표한 부고소식에 마치 이전부터 잘 알고지내던 이웃어른이
돌아가신듯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 졌습니다.

정신적인 스승이었고 멘토였으며 나태해 질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과 영감을 주었고 리더쉽과 혁신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그가 바친 헌신은 인류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를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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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스티브 잡스 추모 포스팅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PC 이야기

2011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PC한대가 21만 3600달러에 팔렸습니다. 한국 돈으로 무려 2억 4500만원. 성능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가격이 2억 원이 넘을까요? 이 엄청난 가격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애플의 첫 번째 제품인 Apple I (애플원) 입니다. 요즘 나온 애플제품이라면 I를 ‘아이’라고 읽을 테지만 Apple I은 애플의 첫번째 PC라는 뜻으로 ‘애플 원’이라 읽습니다.

장난 아닌 거액에 판매된 이 골동품 PC는 1976년 우편판매로 판매된 제품으로 박스에 붙어있는 발송주소에는 유명한 스티브 잡스 부모님의 집주소가 손으로 적혀있습니다. 아마도 스티브 잡스가 손수 썻을 지도 모릅니다. 이 애플I은 지금처럼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초창기 애플은 스티브잡스의 부모님집에서 부품을 조립하며 시작됩니다. 스티브 잡스의 양아버지인 폴 잡스는 자신의 집 차고에서 중고차를 수리해서 되파는 부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만 졸업한 블루칼라 노동자였던 폴 잡스의 집에서 중고차 수리는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I을 조립하기 위해 차고를 비워 달라고 했을 때 당장의 수입을 포기해야했던폴 잡스는 매우 불안했지만 스티브 잡스에게 설득되어 차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집안에서도 조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 어머니였던 클라라 잡스는 조립으로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곤 했습니다.

이렇게 가내 수공업을 통해 만들어졌던 애플I의 판매가격은 송료를 포함해 666.66 달러였습니다. 이 가격으로 정한 것이 우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이 악마의 숫자라고 비난하자 잡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숫자인 777.77과 111.11 두 숫자 중 앞의 숫자에서 뒷 숫자를 뺀 수라고 궁색한 변명을 합니다.

이 가격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현재 가치로 환산해보면 약 2,600 달러 정도쯤 됩니다. (우리 돈으로 280만원 정도) 이때는 지금과 달리 PC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던 정말 비싼 장난감이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라고나 할까요.  

Apple I은 우리가 생각하는 PC와 달리 케이스가 없는 일종의 조립키트에 가까운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드만 덜렁있던 애플I을 산 사용자들은 나무로 된 사과상자를 이용해 자유롭게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케이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애플I의 사진들을 보면 모두 주인의 개성대로 제각각 모양이 다 다릅니다.

이렇게 팔려나간 Apple I 은 전체 판매된 숫자가 약 200여대였으며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진 완성품 형태로 제공되는 Apple II 가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단종되었습니다. 그나마 200대 중에서도 상당수는 컴퓨터 판매업체에 납품된 것으로 실제 사용자에게 판매된 숫자는 매우 적었습니다. 그렇기에 실제 사용자에게 배달이 증명된 애플I은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이렇듯 고가에 팔린 것 입니다.

이 PC의 성능은 어땟을까요? CPU 속도는 1Mhz, 램은 8K byte, 저장장치로 하드디스크 대신에 카세트테이프가 사용되었습니다. 요즘 PC와 비교해 본다면 CPU는 2.5Ghz 듀얼코어 기준으로 1/5000의 수준의 속도입니다. 램의 차이는 더 많이 벌어지는데 근래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4G와 비교해 보면 4Gb = 4096Mb = 4,194,304 Kb 이니 1/524,288 입니다. 케이스만 없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와 마우스도 없었고 모니터도 없어서 흑백TV에 연결해야 했습니다.

남을 홀리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스티브 잡스는 평소 부품구매를 위해 드나들던 인근의 컴퓨터 전문점이던 바이트숍(The Byte Shop)사장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최초로 50대의 물량을 주문 받았습니다. 이 50대를 생산하기 위한 부품을 사기 위해 잡스는 자신의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팔았으며 스티브 워즈니액은 자신이 끔찍하게 아끼는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팔아치웠습니다. 이때 팔았던 잡스의 폭스바겐이나 워즈니액의 전자계산기가 만약 경매에 나온다면 역시 엄청난 가격에 팔릴 것 입니다.

원래 애플컴퓨터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 그리고 로널드웨인 (Ronald Wayne) 이렇게 세사람이 같이 설립했습니다만 애플컴퓨터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 웨인은 불과 한 달 도 안되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애플컴퓨터의 지분 10%를 잡스와 워즈니액에게 팔고 회사를 떠납니다. 그가 팔았던 애플의 지분의 가격은 불과 800달러. 만약 그가 이 주식을 지금까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애플 시가총액 300조원의 10%인 30조원 정도의 재산을 가진 갑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결코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웨인은 그렇게 차버렸습니다. 그는 현재 연금을 받으며 부자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나이차가 5살 이상 났음에도 친구로 지냈습니다. 이들은 홈브루컴퓨터클럽이라는 컴퓨터동아리에서 만났는데 1975년 첫 모임을 가진 이 컴퓨터 클럽은 컴퓨터나 전자 부품을 조립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동네사랑방이었습니다.

Apple I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세상에는 MITS라는 회사에서 나온 Altair8800이라는 PC가 있었습니다. 전자부품으로 이루어진 조립 키트 수준이었지만 대형컴퓨터 밖에 없었던 시대에 최초로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었습니다.

이 PC에 영감과 자극을 받은 스티브 워즈니액은 휴렛팩커드에 다니면서 틈틈히 자신만의 PC를 설계하여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합니다. 평소 컴퓨터 클럽에서 스티브 워즈니액과 친하게 지내던 스티브 잡스는 이 시제품의 가능성을 단번에 알아차리고는 스티브 워즈니액을 설득하여 회사를 세우는데 그 회사가 애플컴퓨터이며 이 시제품이 바로 애플I이었습니다. 전설적인 애플 컴퓨터의 역사는 그렇게 거짓말처럼 1976년 4월 1일 만우절에 시작되었습니다.

후속 모델인 Apple II는 1977년 4월에 판매될 때까지 팔린 Apple I이 정가에 전부 팔았다고 가정한다면 1년간 애플컴퓨터의 매출은 13만 달러입니다. 벤처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갓 스무살을 넘긴 스티브 잡스와 26세였던 스티브 워즈니액에게 첫해 경영성적은 나름 괜찬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회사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애플을 키우기 위해 스티브잡스는 투자를 유치하려 했지만 여러곳에서 거절당했고 애플의 첫번째 투자자인 Mike Markkula를 소개받습니다.

애플I의 작지만 의미있는 가능성을 지켜본 Mike Markkula는 스티브 잡스에게 설득당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 9만1000달러를 애플에 투자하고 25만달러를 투자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합니다. Mike Markkula는 인텔의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스톡옵션으로 많은 돈을 벌어 30대초반에 은퇴했다가 애플에 투자하면서 진정 성공한 투자자로 거듭납니다.

이 돈을 기반으로 애플컴퓨터는 제대로 된 회사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케이스와 키보드를 포함한 본격적인 제품인 Apple II를 개발합니다. Apple II는 애플컴퓨터의 진짜 성공을 가져온 모델로서 이 PC를 통해 PC시장을 석권하였으며 1980년에 주식시장에 상장을 합니다.. 애플II 역시 스티브 워즈니액이 혼자서 설계하였는데 사람 한 명이 설계한 마지막 PC 모델이 됩니다.

애플II는 76년 8월 첫번째 모델이 개발된 이후 애플II+, 애플IIe, 애플IIc, 애플IIGS 까지 10년간 차례로 업그레이드되면서 판매되었습니다. 우리가 애플II라고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모델은 애플II+ 로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입니다. 한국에서도 애플II+를 카피한 호환기종들이 많이 판매되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정식으로 애플컴퓨터를 살수 있는 대리점도 없었고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복제품들이 만들어집니다. 대표적으로 삼보컴퓨터의 트라이젬20도 애플II의 복제PC였습니다. 이 호환PC에서 불법복제된 로드런너, 울티마 같은 게임 뿐만 아니라 세계최초의 스프레드시트(일종의 엑셀 같은 프로그램)인 VisiCalc가 돌아갔습니다.

1977년 4월, 제 1 회 West Coast Computer Faire에서 무지개 빛깔 사과 로고와 함께 나타난Apple II는 기능과 디자인에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지만, 관련 업계나 전문가들은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런 비판속에서 시작한 애플II는 1993년까지 17년 동안 약 600만대의 생산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골동품이란 제작 된 지 100년이 넘어간 물건 중에 역사적으로나 또는 예술적으로 가치있는 제품을 의미합니다. 물론 200대 정도 생산된 희귀성도 가격 상승에 한몫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보면 Apple I 이외에도 디지털 골동품이 될 제품 후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뉴얼을 구비한 정품 마이크로소프트 DOS 1.0 디스켓’ (이 당시는 거의 불법 카피를 했기에 정품소프트가 매우 귀합니다) 이라든지 원형이 보존된 최초의 16비트 IBM PC 같은 제품들입니다.

여러분들 집 창고에 이런 물건들이 있다면 절대 버리지 마시고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대박이 날지도 모르니까요.


글 : 니오
출처 : http://nweb.kr/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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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o@nweb.kr

모폰웨어러블스 대표이사로 일하며 웨어러블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모바일 전문 컨설팅사인 로아컨설팅 이사, 중앙일보 뉴디바이스 사업총괄, 다음커뮤니케이션, 삼성전자 근무 등 IT업계에서 18년간 일하고 있다. IT산업 관련 강연과 기고를 통해 사람들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로 모바일사업의 Insight를 공유하는 '니오의 NWEB' www.nweb.kr 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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