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사이’의 혁명을 촉발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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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 유럽 천재들의 세기

1600년대 유럽, 이른바 ‘천재들의 세기’로 불리는 이 시기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갑자기 대거 등장하여 과학기술을 엄청나게 끌어올린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의 중심을 바꿔놓을 만큼 일대 파란을 일으킨 갈릴레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데카르트,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전역학의 뉴턴을 포함한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 들이 이 시기에 모두 활동하여 서양의 학문적 수준을 혁명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시대적인 변화를 보아도 이 시기는 엄청난 변화들이 잇따랐던 시기로 르네상스, 신대륙의 발견, 종교개혁, 절대왕정시대, 계몽주의, 아메리카 혁명,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시대, 산업혁명 등 인류가 갑자기 도약했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과학, 철학, 사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발적인 혁명들이 거듭되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사이’가 존재한다.

1600년대 초의 사람들은 갈증을 풀 음료라고는 술밖에 없었다. 물이 깨끗하지 않다 보니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술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들이 발달했다. 사실 당시 사람들은 하루종일 술에 취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과 지중해 연안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흑사병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이들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는 스튜어트 리 앨런의 『커피 견문록』에 잘 나타나 있다.

“400년 전의 유럽은 책도 없고, 음악도 형편없었으며, 후추는 알려지지도 않았고, 소금은 귀하고, 설탕은 이제 막 소개되고 있었다.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없었기에 아침식사로 맥주에 달걀을 넣고 되직하게 만들어 빵 위에 부어 먹고, 오전 새참으로 맥주를 마시고, 점심에는 에일 맥주, 저녁에는 흑맥주를 마셨다.”

커피가 유럽을 혁명으로 이끌다

그러다가 인도 출신의 무슬림 순례자 바바 부단이 아라비아 지역에서 밀반출한 커피 종자를 자신의 나라 인도에 들여와 재배했고, 이것이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까지 술은 집에서 마시는 것이었다. 혼자 마시든, 가족끼리 마시든, 파티를 열든 누군가의 집에서 함께 마시는 형태였다. 그러나 커피가 들어오면서 여기저기에 잇따라 커피숍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커피숍으로 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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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취기로 정신을 흐리게 하지만 커피는 각성 효과로 오히려 명료한 정신상태를 만들어준다. 한편으로는 약간 들뜬 흥분감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서로 대화를 나누도록 해준다. 술자리의 대화가 묵은 감정을 푸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취기가 심해지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반대로 술에 취하기 전까지는 실수하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러움을 잃게 되거나, 아예 확 취해서 마음을 열어야지 하다가 심하게 취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할 때는 향긋한 커피향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대화를 나누고 싶게 한다. 커피는 기호식품이기 이전에 문화적 향유의 대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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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처음 문을 연 커피숍 Pasqua Rosée

유럽에 커피가 보급되자 사람들은 커피에 푹 빠지기 시작했고, 커피는 당시 사회적 영향력이 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바흐, 베토벤, 칸트, 나폴레옹 등도 대표적인 커피 애호가 중의 한 명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약한 흥분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평소 하던 생각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고, 평소보다 더 많은 수의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직접 만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커피숍에 모였다. 유럽은 갑자기 커피홀릭에 빠져들었고, 커피숍에 모인 사람들은 훗날 혁명이라고 불릴 일들을 논의했다. 르네상스를 통해 신의 세계에서 독립한 인간에게 커피는 오늘날의 SNS 열풍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그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양으로 다양한 정보들, 감정들, 통찰들이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간 것처럼 커피를 매개로 유럽 문명에 일대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계몽주의였다. 정치, 사회, 철학, 과학 이론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회 진보적, 지적 사상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지적인 토론이나 논쟁은 서신이나 논문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었고, 대학과 같은 아카데믹한 공간에서 나누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커피숍에 모여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함께 모인 다수와 공유했고,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커피숍 모임을 통해 퍼져나갔다. 생각이 서로 닿는 사람들끼리는 다시 회동을 해서 만났고 생각들을 발전시켜가며 토론했다. 이처럼 계몽주의 운동의 이면에는 커피숍이 있었다. 런던의 터크스헤드 커피점The Turk’s Head은 정치적 주제에 대해 손님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세계 최초로 투표함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사, 상인 여러분, 모두 함께 자리에 앉으십시오. 이곳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저 적당한 빈자리를 찾아 앉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구도 높은 사람이 왔다고 해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커피숍에서 만나 대화를 하는 와중에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접하며 새로운 연결을 느꼈고 전율했다. 여자들이 하루종일 만나 대화한 다음에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 가서 전화로 하자고 하더라는 우스개 같은 상황이 1600년대의 유럽에서 남녀를 막론하고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정보들과 발견들이 그 전에 비해 엄청나게 연결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머리 위에 전구가 떠오른 것처럼 새로운 생각에 열광했다. 계몽주의라는 단어가 영어로 빛을 밝히는 운동En+lighten+ment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커피, 사이의 가치를 폭팔시키다

커피는 그저 마시는 음료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이의 가치를 폭발시키는 매개체였다. 커피숍을 통해서 가치 있는 아이디어나 사상들이 커져가기 시작했고 이것은 결국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와 시민의 역할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부는 도대체 왜 시민의 이익을 제대로 보장하고 지켜주지 못하는가는 시대를 막론한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온 사회가 정부와 국회, 그리고 관료들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바뀌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정부가 우리의 입장에 서서 노력할 거라고 순진하게 바라기만 할 것인가,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자,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행동하고, 인권과 각종 사회제도 등 더 큰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행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력을 넣자, 함께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보자고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프랑스 혁명, 영국 혁명을 이끌어낼 정도로 거대한 물결로 번져갔다.

영국 국왕 찰스 2세가 1675년에 커피점을 금지한 표면적인 이유는 남편들이 집으로 도무지 돌아오지 않아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생활을 흔들고 있으며, 커피가 남성의 성기능에도 좋지 않다는 보고서 때문이었지만,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이러한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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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의 청원

대한민국의 커피홀릭을 다시 조명하다

한국은 요즘 그야말로 커피홀릭이다. 2011년 기준으로 커피소비량을 보면 한 사람이 연간 400잔의 커피를 마신 셈이라고 할 정도로 하루 한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한 사람이 하루에 10잔 이상 마시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커피를 얼마나 마시느냐 자체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길 거리에 커피숍이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과 1,2년 사이만에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커피숍이 들어섰고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를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로 빽백하게 들어차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렇게 커피숍이 범람하기 전에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커피문화의 확산에 우려하는 시선을 많이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달에 커피값만 2,30만원을 훌쩍 넘기는 사람도 많을 정도니 말이다.

 한국도 사이의 혁명이 진행중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이것은 혁명의 시작이다. 사람들이 만나기 시작했고 생각을 나누고 있으며 이것을 스마트 디바이스의 보급과 더불어 SNS를 통해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숍의 대부분은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에 집중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점이다. 스타벅스를 포함한 많은 기존의 커피브랜드 가게들이 한 사람이나 두 사람 정도만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둥근 테이블’로 커피만 마시고 일어서게 만들었던데 반해서, 까페베네를 대표적으로 최근의 커피숍들은 넓은 테이블 형태로 소규모 모임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커피숍은 이제 잠깐 쉬면서 마시며 대화하는 공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이다. 기존에는 유명 메이저 커피 체인점들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에 각종 동네커피숍은 물론 에이블스퀘어, 토즈, 윙스터디, 달과6펜스, 토끼의 지혜 등 커피를 근간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이 훨씬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주목할 점은 이들 가게들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목이 좋은 1층이 아니라 오히려 빌딩의 고층에 있거나 유동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은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발 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런 가게들의 특징은 다양한 크기의 테이블과 편하게 전자기기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충전용 전원의 제공이라는 점이다. 이는 커피 가게가 아니더라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스타벅스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실리콘밸리와 같은 혁신이 일어나는 공간의 ‘사이’를 공략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하이테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식사를 하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교환하고, 거래를 성사시켰다. 1인기업가들은 커피숍에 앉아 하루를 보내며 자신의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지금의 커피홀릭 문화 확산은 그저 사치를 조장하는 부정적인 시대적 흐름으로 볼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혁명을 준비중인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는 어디에 있었을까. 요즘 대한민국에 10년전의 벤처신화가 다시 재현될 것 같다는 얘기들이 주위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과연 이것과 무관한 이야기인 것일까?

글 : 송인혁
출처 : http://everythingisbetweenus.com/wp/?p=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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