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자회사에 대한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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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23420145@N07/5286529979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을 만나다 보니 한국 스타트업 회사들이 특히 자회사 구조가 복잡한 경우가 많다는 걸 느낀다.
 
비교적 신생회사로 매출규모도 얼마 안되고 직원도 몇십명 안되지만 자회사를 설립한 회사들을 많이 보게 된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스타트업 회사가 자회사를 차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고 그리 권장할 만한 일도 아닌데, 유독 한국 (중국도 좀 그러함)에서는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투자자로서 이런 경우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는
 
1) 모회사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데 구지 자회사를 만들었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고
2) 자회사와 본회사의 얽혀있는 지분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외부인으로서 숨겨진 관계까지
    다 속속들이 파헤치기 좀 귀찮기도 하고
3) 자회사의 CEO가 정말 그 회사의 결정권을 가진 CEO인지 아니면 소위 말해서 모회사의 명령에
    따르는 ‘바지사장’인지도 의문이고
4) 투자된 금액이 모회사로 흘러들어가는지 자회사로 가는지 애매할 수도 있는등이 있다.
 
    (특히 두 회사가 salesforce 등의 resource를 공유하는 경우)
 
아무튼 이러한 등등의 이유로 투자자 관점에서는 지분구조가 깨끗한 회사보다는 훨씬 매력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동일한 조건일 경우)
 
자회사를 설립하는 배경이 다 다르므로 스타트업이 자회사를 차리는건 무조건 나쁘다는 일반론은 어렵겠지만 내가 본 많은 경우에 자회사를 차리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소위 말하는 ‘경영권 보호’ 차원이였다.

가상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자. 온라인 게임으로 출발한 “수퍼펀”이라는 회사가 있다. 몇번의 투자를 받고 개발이 좀 지연되다가 보니 창업자의 지분이 51%이고 나머지 49%는 투자자들에게 속한 상황에서 새로운 모바일 게임 아이디어가 생겼다. 내부적으로 몇몇 사람을 동원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는데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이 섰다. 모바일 게임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론칭하려면 20억이 들어갈 전망인데 현재 자금 사정이 거의 바닥난 상태이므로 외부투자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창업자의 지분이 51%이므로 이번에 외부투자를 받으면 창업자의 지분은 당연히 50% 아래로 내려갈 수 밖에 없다. 투자는 받아야 겠지만 자신의 지분이 과반수 아래로 내려가는건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경영실적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최악의 경우 회사에서 쫓겨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스티브 잡스같은 스타 CEO도 자기가 만든 애플에서 쫓겨난적이 있지 않던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수퍼모바일” 이란 자회사를 차리기로 한다. 모회사 “수퍼펀”이 지분 60%를 소유하고 20억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그들에게 40%를 주는 형태로  “수퍼모바일”을 설립하면 해결이 되는 것 같다. 모회사, 자회사 모두 과반수 이상 소유하고 있으니 경영권도 “보호”되고 외부투자도 받을 수 있어서 모바일 게임사업을 할수 있게 된다. “수퍼모바일”의 CEO는 프로토타입 개발 담당 팀장에게 일단 맡기기로 한다. 이렇게 몇번 하다보면 매출은 얼마 없는 회사가 자회사를 서너개 거느리고 그 자회사들의 해외 법인까지 생겨서 금방 서로 지분구조가 물고 물리는 구조가 형성된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흔히 쓰는 수법인 순환출자라는게 별게 아니고 아주 간단히 말하면 위와 같은 출자구조가 회사 몇몇개를 통해 한바퀴 빙 돌면 형성이 되는 것이다)
 
물건너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자의 지분이 과반수 아래로 내려가는 건 성장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현실적으로 보통 Series B까지 하게 되면 대다수의 회사가 과반수 아래로 내려갈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생각은 “1억불 회사의 10%를 가지는 것이 백만불 회사의 50%를 가지는 것 보다 낫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이 원래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물론 이들도 다 사람이니 회사 지분이 dilution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있고 걱정도 있을테지만, 많은 entrepreneur들이 가지는 생각은 그러한 risk를 감수하고 회사를 1억불 회사로 만드는데 focus를 둔다. 즉, 아까 말했듯이 투자도 못받고 생각했던 사업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이도저도 안되는 회사의 50%들고 있느니, 차라리 한번 질러서 1억불 또는 10억불짜리 회사를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게 그들의 꿈이다. 그리고 여러차례 funding으로 dilution이 되더라도 실리콘 밸리의 많은 VC들이 employee option pool을 재생해서 CEO를 비롯한 직원들이 20%정도는 소유할 수 있게 한다.  Series B정도까지 하면 이미 경영권은 회사의 이사회에 있는 것이고 지분구조나 자회사등을 통해 경영권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popular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CEO가 자기 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performance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사회 멤버를 개인적인 친구로 앉히는등의 방법도 있지만 그건 꼼수다)
 
그럼 우리나라에선 왜 이렇게 경영권 보호에 집착하는 것일까? 뭐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신뢰부족이라고 본다. CEO는 투자자를 믿지 못하고 투자자는 CEO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사업이 다 잘 되면 좋겠지만, 초창기 사업이란게 잘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럴 경우 성숙하지 못한 투자자는 패닉상태에 이르게 되고 감정적인 결정과 행동을 하게 되어 회사의 장기적 발전에 저해되는 일을 저지르기 쉽상이다. 쉽게 말하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본전 찾기에 급급하게 되고, 그와중에 방해가 되는 CEO나 창업자를 밖으로 내모는 경우도 생긴다.  뉴스에도 이런 경우가 보도되기도 하니 아마 생소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언젠가 본 사건에서는 심지어 “용역”까지 동원되는 경우도 보았다.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주위에서 듣거나 보게되면  “역시 믿을건 내 지분밖에 없어” 라고 결론 짓는게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이 아주 나쁘다고는 보기는 좀 어렵지만 회사를 크게 키우는데 장애요소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래서 똑같은 돈을 들고 온다고 다 똑같은 투자자가 아니라 믿을만한 투자자를 선택하는게 아주 중요하다. 반대로 투자자들도 CEO에 대한 background조사를 철저히 하는 이유가 믿을만한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기 때문이다.
 
신뢰 부족이란게 원래 엄청난 사회 비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좀 다른 이야기 이지만 북한과 남한이 서로 공격하지 않을것을 믿지 못하니 엄청난 돈을 들여서 대치할 수 밖에 없는 거다. 우리나라가 군사비에 쓴 돈을 다른 사회 간접자본에 투자했다고 하면 우리나라는 어쩌면 지금 보다도 훨씬 큰 성장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회사의 경우에 있어서도, 투자자를 믿을 수 없어 경영권 방어에 집착한 나머지 좋은 아이템을 support하지 못한다면 그또한 회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일 것이다.  그리고 자회사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정말 자회사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 (경영권 보호 같은 꼼수 말고) 가 없으면 만들지 않는게 좋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자회사 존재 이유가 있더라도, 웬만하면 모회사 스타트업의 규모가 연매출 수백억~수천억의 안정적인 궤도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예 생각하지 마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글 : 윤필구
출처 : http://bit.ly/x7He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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