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역전 – 성별 차액거래(Gender Arbitrage)가 사라지는 순간

1. 나의 와이프는 나보다 10배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출산 후에 집에서 쉰다는 것은 진정 국가적 낭비이다. 와이프의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슬슬 와이프가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들이 시작되고 있다.

와이프의 장점은 그녀의 ‘책임감’이라는 특성때문에 생긴다. 그 책임감은 일에 적용될 때도 강력하게 발휘되지만, 반대로 가족에게 적용될때는 더 강력하다. 그녀는 자신의 “책임감”이라는 강점 때문에 생긴 딜레마로 인해서 평생 한번도 해 보지 않았던 심각한 고민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비단 우리 가족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2. 최근에 몇몇 주변의 여성 지인들 중에서 회사를 그만 둘까 하다가도 회사에서 제공하는 탁아 프로그램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것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 안에 어린이집이 생겼기에 이제는 출근할 때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잠깐 가서 얼굴을 볼 수도 있고, 퇴근할 때 데리고 집에 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20대에 커리어가 훨씬 더 중요한 상황에서야 회사의 탁아 프로그램 때문에 직장을 결정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만, 막상 아이가 생길 것을 생각하면 이 부분도 회사를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아니,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 외국계 제조업, 컨설팅 그리고 몇몇 벤처만 경험한 나는 촌스럽게도 국내의 대기업 및 공기업 다수가 회사내에 탁아소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이런 문맥에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2012년이 밝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서초동 삼성타운의 어린이집이었다는 사실은 상징하는 바가 컸다. 그리고 이 어린이집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고 하니… 부럽다.

관련기사: [매경포럼] 이건희와 어린이집

일부에서는 몇몇 대기업의 사내 어린이집 설립을 두고, 어린이집 근처에서는 데모나 시위를 못하게 하는 법률을 이용하기 위한 꼼수라고 한다. 진위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목적이 어떠하든 종업원들이 어린이집의 질에 만족할 수준이라면, 어린이집 건립 자체의 방향성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4. 내가 학부를 졸업하고 학부를 졸업할 때만 해도 외국계 기업에 가는 이유를 ‘복지’와 ‘남녀평등’ 혹은 ‘커리어 계발’이라는 말로 표현하곤 했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국내 기업의 현실에서 여성들이 마음놓고 생리휴가, 출산휴가 등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은 분명 많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옵션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언제부터인가 역전되고 있는 것 같다.

능력있는 여성들이 모두 외국계 은행이나 외국계 제조업체에서 데려가는 현상이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매우 심각하게 다뤄졌다. 아래 아티클은 2010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 실린 Gender Arbitrage 라는 글이다. (Gender Arbitrage 라는 단어에 대해서 성별 차액거래 라고 나름의 번역을 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남녀차별이 심각한 한국 상황에서 능력 있는 여성인재들이 외국계를 선호하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외국계 기업 입장에서도 군대 다녀오느라고 나이가 많아진 남성들에 비해서 같은 임금에 (어리고, 똑똑하고, 영어도 더 잘하고, 게다가 이쁘기까지한) 여성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었다.

관련기사: 이코노미스트 기사: Gender arbitrage in South Korea: If South Korean firms won’t make use of female talent, foreigners will (한국 기업들이 여성인재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외국인이 할 것이다.)


5.
그런데….한국 사회의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한국의 근로자들과 경영자들간에 더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한국기업의 복지 수준이 매우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인다.

물론 이러한 복지는 외국계 기업에서 말하는 복지와는 종류가 다르다.

외국계 기업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너가 할 일만 다 끝낸다면..’ 이라는 “IF”에서 시작된다. 즉, 너가 할일만 다 하면 휴가를 가도 좋고, 집에 일찍 가도 좋고, 심지어 회사에 안와도 좋다라는 식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면 ‘돈’으로 보상해 주겠다는 방식이다.

그러나 ‘너가 할 일만 다 끝낸다면’ 이라는 말은 너무 불확실성이 큰 말이다. 공부에 끝이 없듯이 일에도 끝이 없고, 상사가 항상 시간 내에 끝날만큼의 일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 게다가 주어진 일을 끝냈으면, 더 할 일이 없는지 스스로 찾아보는게 오너십이고 리더십이라고 말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나는 종종 일을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스스로 개체수를 늘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야근수당”처럼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한 업무를 더 하는 것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회사들 중에서는 야근수당을 주는 외국계 기업은 없었고, 오히려 이런 야근을 ‘Learning Experience’ 로 표현하곤 했다.

여튼 이들의 논리는 많이 일하는 만큼 더 많이 배운다는 논리이고, 그 결과 너희들은 나중에 국내기업으로 가더라도 남들보다 더 높은자리, 좋은 자리로 가게 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에 이런 말을 믿고 외국계 기업으로 가서 10년 정도 일하다가 지금 한국기업으로 가려고 했다면, 생각보다는 자신의 몸값이 discount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10년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이 굉장히 발전했고, 외부의 인재들에 대한 환상도 조금씩 걷히고 있기 때문이다.

6. 한국계 대기업들의 복지는 사회적 가치와 가족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것 같다. 탁아시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이나 일본 기업은 예전부터 공동체적 관념이 더 강했고, 종업원(employee)도 중요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로 여기는 경향이 미국계 기업에 비해서 훨씬 강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경조사에 대한 지원, 직원들의 건강/의료에 대한 지원 등이 외국계 기업에 비해서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는 금액 전부를 지원해 주는 것은 물론, 운동할때 신을 운동화를 살 돈까지 지원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복지역전 현상의 또 한가지 이유는 한국 시장이 최근에 부각되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Multi-National Companies (MNC) 입장에서는 충분한 수의 직원을 고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인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은 우리나라 상법에서 말하는 중소기업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종업원을 300명 이하로 유지하게 된다. 사실 300명 이하라고 하면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탁아, 의료 등의 업체에서 볼때는 아주 큰 고객으로 간주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본사입장에서도 300명도 안되는 지사의 종업원들을 위해서 별도의 복지 혜택을 구성해 주기는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은 보통 community 개념이 발달해서 탁아와 육아와 관련된 복지는 국가나 주(state)에서 해결해 주거나, 혹은 자신의 주거지역에 있는 본사와 alliance가 있는 탁아소를 싼 가격에 (discount해서) 혹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우리처럼 대도시에 몰려사는 사람들과는 구조가 좀 다르다. 저마다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미국의 본사에 우리의 방식을 요구하기에는 우리의 협상력이 딸린다.

반면에 국내의 대기업과 공기업들은 이런 약점이 없이 아주 sizable 한 고객층을 형성해서 운동, 의료, 탁아 등의 서비스 업체들과 협상을 전개할때 협상력을 키우거나, 아니면 그냥 사내에 이런 시설을 만들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경영진들도 어느정도 open되어 있는 것 같고, “심각한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기업들과 경영진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엔 우리기업 vs. 외국계기업의 근무환경의 차이가 현저했다. 앞서 언급한 learning experience라는 측면에서도 그 격차가 존재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 기업중에서 global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이 다수 배출되었고, 이런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하는 국내용 기업들조차도 이들과 인력을 놓고 국내에서 어차피 경쟁하기 때문에 이들의 복지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는다.

7. 우리나라 소비자, 근로자들을 ‘강하다’, ‘강성이다’, ‘다혈질’ 혹은 ‘극성맞다’고 묘사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원래 예전부터 원하는바를 얻어 내는데 있어서 어느정도 소질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나는 돈과 커리어에 대한 보상으로 혜택을 제공하는 외국계 기업이나, 공동체의 관념으로 접근하는 한국계 기업들 모두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가족에 대한 가치를 더 중요하게 느끼는 나는 한국 기업들의 외국기업에 대한 ‘복지 역전승’이 많을 수록 왠지 더 반갑다.

NOTE] 외국계 기업을 주로 경험했던 저는 국내기업의 실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고 외부의 시각에서만 봤을 수 있습니다. 내부의 더 정확한 시각을 댓글로 달아주시는 분이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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