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과 정의 그리고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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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효율의 개념

내 머릿속에는 효율성이라는 것은 서구적인 개념이고, 어른스러운 개념이며, 무엇보다 계산적인 개념이다.

먼저, 효율성이 내 머릿속에 매우 서구적인 개념으로 자리잡는 이유는 내가 커가면서 서구의 문물을 더 많이 접하게 되고, 특히 직장/회사 라는 곳을 접하면서 효율성이라는 개념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에 노출될 때마다 느끼는 낯설음이 왠지 ‘우리’에게서 온 것 같지는 않다는 비린내를 느끼기 때문에 더욱 서구적인 개념이라고 느낀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 우리 조상님들이 효율성을 강조했을 것 같지는 않거니와,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의 가정에서 자라다가 카투사로 군대를 다녀오고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 나로서는 ‘어린시절 =동양적/한국적’ vs. ‘성인시절 = 서구적’이라는 알지 못할 등식이 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나 보다. 따라서 청장년층에 속하는 나이가 되면서 배우는 것들에 대해서는 자꾸만 서구적인 개념처럼 느껴진다. 꼭 효율성이라는 개념이 항상 나에게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무언가 야박하고, 계산적이고, 사람의 따뜻함이 덜 느껴지는 것들에게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효율성이라는 것은 자신이 들이는 인풋(input) 대비 거둬들이는 아웃풋(output)으로 측정되게 마련이다. 인풋에는 돈, 시간, 노력, 정성 등 사용 가능한 거의 모든 자원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아웃풋은 돈, 명예, 사회적 파장 등으로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들을 나타낸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특히 이러한 인풋과 아웃풋이 모두 측정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측정 가능하지 않다면 그 두가지의 변수로 이뤄지는 효율성을 측정하지 못하며, 측정하지 못하는 효율성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인풋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과 아웃풋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효율성의 개념에 있어서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경영학에서는 효율성의 개념을 측정할 때에 Return 이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한다. 이것 역시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풋 대비 아웃풋과 별반 다를 바는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들은 ROIC(Return on Invested Capital) 같은 개념 혹은 주식분석에서 많이 사용되는 ROE(Return on Equity), ROA (Return on Asset)과 같은 개념들이다. 때로는 IRR (Internal Rate of Return)과 같이 일정 기간 안에 수익률로서 절대적인 인풋에 상관없이 몇 %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지를 측정하기도 한다. 예컨대 기업 경영에서 돈이라는 것은 희소한 리소스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 수익률이 높은 사업이라면 얼마든지 투자자를 모집하거나 차입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어서, 이 경우에 효율성은 %(퍼센티지)의 개념으로 측정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매년 100%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펀드가 있다면,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 희소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높은 수익률을 거둘 것인가?(how?)라는 “방법”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측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마음속에 별로 없다. 어린 아이에게는 이 세상은 내가 알 수 없는 커다란 우주이고, 시간과 돈과 노력과 정성 같은 리소스들은 무한정에 가깝게 많기 때문에 이러한 리소스를 알 수 없는 세상이라는 솥에 넣고 끓이면 도대체 어떤 음식이 나올지에 대한 계산따위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둥글게 둥글게 친구들 선생님 부모님 모두와 잘 지내도록 교육받는 한국의 사회에서, 우리는 효율성 따위를 따지는 것은 불필요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부정적인 이미지마저 가지며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를 먹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효율성은 우리들 모두의 머릿속에 중요한 무엇으로 자리잡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자원들이 한정적이라는 가정을 우리는 머릿속에 주입받게 되는데, 그 순간 우리는 깨달음을 얻은 듯 영리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누군가는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누군가는 훨씬 작은 효과밖에는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우리의 미래라도 걸려 있는양 착각하게 된다. 공부도 효율적으로, 시간도 효율적으로, 직장 생활 또한 효율적으로…. 그렇게 우리는 바빠진다.

한편, 효율성이라는 것은 항상 사후적으로는 거의 대부분 부정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어로는 hindsight(뒤늦은 깨달음이라고 네이버 사전에 나온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곧 효율에 관한한 우리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돌이켜보면 내가 초중고 12년을 다시 다닐 자신은 없지만, 그 당시의 나를 만나서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즉, 지나고보면 과거의 비효율이라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다는 말이다. 사람이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그때 정말 효율적으로 일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솔직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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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ogle Image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개인적으로 가장 섹시한 눈을 가진 여배우라고 생각하는)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하는 B급 영화중에서 ‘인 타임(In Time)’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돈이 아닌, 시간으로 모든 것의 가치를 매기는 가상의 미래사회가 배경이다. 즉, 사람들 각자마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은 그 사람의 체내에 있는 바이오 칩에 입력되어 있어서, 시간을 다 사용한 사람은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시간) 부자들은 더 오래살 수 있고, (시간) 가난뱅이들은 빨리 죽는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일한다. 또한, 사람들은 시간을 사고 팔고, 심지어 시간으로 도박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런 사회에 의문을 품고,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시스템의 음모를 밝히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말미에는 ‘알고보면 모든 사람들이 풍부하게 쓰고 죽을 만큼의 시간이 있다’라는 것을 밝혀낸다. 주인공은 이 시간을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들을 해방시킨다는 것이 이 영화의 스토리이다. 이 영화는 효율성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믿음에 대해서 또 다른 중요한 의문을 가하는데, ‘과연 우리 주변의 자원이라는 것들은 희소한가?’라는 것이다. 즉, 경제학의 대부분의 문제는 ‘희소한 자원’의 배분에 대한 문제인데, ‘어떤 자원이 희소하지 않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우리가 바쁘고 각박하게 사는 이유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이 희소하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어떤 자원이 별로 희소하지 않음을 깨닫고 허무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생긴 편견이나 습관 때문에 논리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을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Scarcity Heuristic이다. 예컨대 사람들을 모아 놓고서 티셔츠를 나눠주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흰색 티셔츠를 나눠주고 단 한명에게만 파란색 티셔츠를 나눠주는 경우에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파란색 티셔츠를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티셔츠의 가격이나 품질이나 다른 못든 것을 떠나서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희소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 한번쯤 질문을 해 봐야 할 수도 있다. ‘정말 이 자원은 가치있는 것인가?’

목숨걸고 다니던 회사에서 짤렸는데 의외로 다른 회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든지, 중요한 보고를 앞두고 시간이 없는 줄 알고 열심히 일했는데, 갑자기 보고가 미뤄지는 등등의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혹은 우리가 희소하다고 생각한 자원이 실제로 희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은 그 자원보다 더 중요한 자원이 있어서, 희소하다고 생각했던 자원의 중요성이 확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스무살 까지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가 영원히 계속되는 지겨운 일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누님이 시집을 가시고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하는 식사가 그렇게 그리웠던 적이 없다. 그 전까지는 전혀 희소하지 않았던 가족과의 시간이란 자원은 어느순간 나에게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되고, 상대적으로 더 중요했던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그 후에 이어지는 노래방의 한바탕 소란들은 생각보다 희소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2. 시간의 효율적 사용에 대하여

그런데 사실 시간의 효율성에 대해서 우리가 갖는 대표적인 맹점은, 많은 경우에 시간의 효율성이라는 것은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A라는 방법이 B라는 방법에 비해서 효율적일 것 같다고 하자. 그래서 나는 A라는 방법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에 시간을 되돌려서 B라는 방법으로 일을 했을 경우에 A에 비해서 얼마나 단축된 시간으로 일을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의 직관이 우리에게 B보다는 A가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컨대’ 말해 줄 뿐이다.

최소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인 경우에는 A방법으로로도 시도를 해보고, B방법으로도 시도를 해 봐서 여러번의 시도를 통해서 비교를 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하는 많은 업무가 반복이 불가능하고, 심지어는 한번 실수하면 넘어지는 두발 자전거와 같이, 그런 테스트를 해 볼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회사 전체적으로는 A를 몇몇 부서에서 시범적으로 시도해보고 B를 대체해서 전사에 퍼뜨리는 방식으로 실행하기도 하지만, 우리부서와 다른 부서의 사정이 다른 경우도 많고, 왠지 아웃풋에는 큰 차이가 없이, 변화 자체에 쏟는 노력만 너무 크게 들어간 것은 아닐지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많다.

최악의 경우는 변화가 두려워서 B라는 방법을 몇십년째 사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은 선배들에게 물어본다. ‘제 생각에는 A 가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굳이 B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러면 선배들은 ‘이렇게 수십년동안 B를 사용하는데는 이유가 있으니까 사용하는거겠지…’, 혹은 ‘그렇게 방법을 바꾸는 것에는 더 많은 혼란이 초래될 뿐이야’ 라고 말하는 경우들 말이다.

#3. 부분의 효율과 전체의 효율

기업의 업무에서 효율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전체의 효율과 부분의 효율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회사에서 대체로 겪는 현실적인 경우의 대부분은 나 혼자 효율적인 것이 전체의 효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리라. 나 혼자서 죽어라 뛰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든지, 나는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 같은데, 우리 팀이나 부서의 아웃풋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경우들이다.

더 나쁜 경우는 나의 효율이 전체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이다. 우리 부서의 효율적 업무처리가 다른 부서에게 해가 되는 경우이다. 그럼에 생각해보면, 효율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 아니라, 특히 우리가 일하는 회사나 조직에서는 효율성이라는 것을 눈을 크게 뜨고 체크해 주는 콘트롤 타워가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이러한 콘트롤 타워의 역할을 CEO 및 그의 참모들이 하거나, 전략기획실이나 기획조정실 같은 거창한 이름의 부서가 있어서 이들이 관장한다. 물론 이들이 모든 효율성 지표를 체크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우리 회사가 집중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 회사에서 효율적이지 않아도 되는 팀이나 부서를 정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부서는 전략적인 선택에 따라서 ‘유지’ 혹은 ‘서서히 쇠퇴’ 정도만 해 주어도 사장님은 크게 불만이 없어 보이는 곳들이다. 물론 이 부서 내에서 일하는 업무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르지만 말이다. 우리 모두는 (위에서 말한 효율성에 대한 개념을 배운 바로 그 순간부터) 효율적이자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기에,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는 순간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고, 섭섭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생에는 항상 반전이라는 것이 있어서, 조직 내에서 이러한 부서에 배정받은채로 ‘디펜스(defense)’에만 열중하던 사람들이 때로는 메인 스트림으로 부상해서 화려한 컴백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 인생의 효율이라는 것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안철수 교수도 언젠가 TV에 나와서 자신은 ‘효율성’으로만 보면 참 비효율적인 삶을 산 사람이란 이야기를 했다. 의사였다가 전혀 상관 없는 벤처기업가를 했다가, 갑자기 회사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서 MBA를 갔다가, 그 다음에는 카이스트에서 교수가 되었다가.. 아무튼 현재의 커리어와 다음 커리어가 항상 이어지지 않는 것은 분명 비효율적인 커리어일 수도 있다. 물론 안철수 교수가 매우 극단적인 예임에는 틀림 없으나, 그의 경우만 보더라도 효율이라는 것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비효율’이 굉장히 파워풀한 ‘효율’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니, 우리 머릿속에서는 관념적으로 분명한 것만 같았던 효율이라는 개념은 생각할 수록 아리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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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무릎팍도사 안철수 교수편 캡처

#4. 효율성과 다양성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인가?

경제학에서 효율성을 측정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아니라, 얼마나 버려지고 낭비되는 양이 적은가? 라는 것이다. 즉, 내가 100을 사용해서 80이라는 결과를 얻고 20을 버려야 한다면 효율성을 80이라고 보는 방식이다. 우리의 업무에서 이렇게 버려지는 20은 ‘실패’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실패’나 ‘실수’가 적을 수록 효율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한국인들의 사고에는 왠지 인풋 대비 아웃풋을 극대화 하는 효율성 보다는 실패를 최소화하는 효율성이 더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한정된 자원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주입을 많이 받고, 또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잘 활용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효율성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고 자라서일까? 왠지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서도 실패를 좀처럼 내재화 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도 좀처럼 용인하지 못한다.

한편, 내가 미국에 유학와서 가장 놀라운 경험중에 하나는 미국 클래스에서 볼 수 있는 다양성이다. 나처럼 영어를 더듬더듬하는 친구가 발표를 하거나 질문을 하면 짜증이 날 만도 한데, 모두들 경청을 해 준다. (물론 속으론 짜증내는 친구들도 있겠지…) 교수님도 정말 쓸데 없는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고, 그 뿐 아니라 그 멍청한 질문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아내서 알려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패와 실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런걸 차마 물어봐도 되나?’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다들 거리낌 없이 질문을 하는 덕분에 수업은 조금 느려지고, 이리저리 헤매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아니 아시아 여러 나라의 강점은 효율성에서 나왔다. 삼성, 현대 등 우리 주변의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효율성을 강조하는 회사들이다. 그들은 서구의 것들을 베껴서, 좀더 개량한 후에 그 방식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데서 가치를 창출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이다. 그리고 그러한 효율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론에는 바로 일치단결, 화합, 일사분란 같은 통합/통일 중심의 사고가 깔려 있다. 60-70년대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도 다양성을 희생하고 획일성을 강조한 결과인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구성원들이 획일적(homogeneous) 일 수록 아무래도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하기 쉽다는 사고방식이다. 같은 머리색깔, 비슷한 가정환경과 교육환경,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우리들은 굳이 이것저것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하는 것이 훌륭한 가치라고 배우고 자라왔다. 수업에서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친구들은 ‘효율적’ 수업을 방해하는 멍청한 아이들에 지나지 않고, 회의에서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흐름을 읽지 못하는 ‘눈치없는’ 무능력자로 찍히기도 한다.

이런 문화속에서 자란 나에게 미국 교육이 추구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어떤 회사나 어떤 교육기관에서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이다. 거의 모든 회사의 홈페이지에 다양성은 핵심가치(Core Values) 라며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들어가 있다. 나도 처음에는 이러한 다양성의 강조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거나, 법적/정치적으로 흑인, 여성, 아시안 등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하는 affirmative action (차별 철폐 조처)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치부해 왔다. 그런데 미국에서 조금 생활을 하다보니, 전부는 아니지만 미국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다양성을 통해서 가치가 창출된다고 믿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다양성과 효율성은 Trade-off, 즉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가는 관계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다양한 의견을 듣다보면 일이 빨리 빨리 진행이 안되지 않냐는 질문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렇다’라고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통해서 많은 대안을 창출해내고, 때로는 더 창의적인 답을 얻기 때문에 지나고나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더 효율적일 때도 있다고 말한다.

다음은 대학 시절 나의 은사님이 잘 사용하는 예이다. 참고로 그 분의 전공은 경영전략.

예컨대 두 사람이 달리기 경주를 한다. 한 점에서 출발해서 멀리 가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두 사람은 출발 총성 소리와 함께 길이 나있는 동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A가 앞서가기 시작하고, B는 조금 뒤쳐졌다. 한참을 뛰는데 앞서가던 A가 동남쪽으로 뛴다. 그 쪽으로는 길도 없는데 말이다. 방금전까지는 정확하게 동쪽으로만 뛰던 A를 쫓아가던 B가 당황한다. 아니, 분명 우리는 길이 있는 곳으로만 가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는 한 적도 없다. B는 또 죽어라고 동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한 A를 쫓아 간다. 거의 앞서가던 A를 따라잡을 무렵, 이번에는 동남쪽으로 달리던 A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높이 올라간다. 뒤에 쫓아오던 B는 또 생각한다. 아니? 땅 위에서만 경주하는거 아니었나?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는 한 적도 없다. 경기의 단 한자기 룰은 출발점에서 멀리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의 기업들도 이런 식이다. 우리가 효율성이라는 가치에 집착해서 열심히 따라가기 놀이를 하고, 때로는 운좋게 앞서가던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 순간에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한다.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품질을, 품질이라고 생각하면 디자인을,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네트워크와 기술을… 그들이 더 똑똑해서가 절대 아니라, 그들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 주변에 있는 미국인들은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국애들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미국인들 중에서는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망각한채 게을러진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이나 한국의 인재들이 언젠가는 이 경주를 이길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기뻐야하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미국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이 바로 절망의 근원이다. 그들은 이러한 점도 이미 생각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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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justiceharvard.org/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라는 책은 미국보다도 우리나라 책 시장에서 훨씬 큰 인기를 누렸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대한 담론에 굶주린 한국인들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답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을 읽어보면, 그리고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를 보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딱 꼬집어서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이런 시각에서 볼 필요도 있고, 저런 시각에서 생각할 필요도 있고.. 라면서 요리조리 피해가는 느낌이다. ‘효율적’으로 요점을 딱딱 집어주고, 정답을 알려주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배운게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교육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의는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볼 것을 가르쳐준다.

나는 ‘정의’라는 말이 싫다. 왠지 누군가는 옳고 누군가는 그르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꼭 ‘정의=정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나와서 ‘나는 정의롭고, 그는 정의롭지 못하다’ 라고 말하면서 우길 것 같다.

힘들게 효율성을 좇아서 달려온 우리는 정답을 원하고,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누가 효율적인지를 측정하지도, 누가 옳은지를 판단하지도 말고, 모두가 자기만의 생각과 스타일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 나는 더 가치를 둔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하기 위해서는 재벌이 죽어야 하고, 보수당이 집권하려면 진보당이 패배해야 하고, 기독교가 번영하려면 불교가 사이비가 되어야 하며,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내가 권력을 잡고 상대방은 물러나야 하는 그런 사회가 아닌,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결국은 더 효율적인 사회일 뿐 아니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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