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국은 컴퓨터산업에서 뒤처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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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그의 이름은 컴퓨터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다.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고 그가 제시한 가상적 개념인 ‘튜링 머신’은 현대 컴퓨터의 모태라 평가받기도 한다.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의 착안에도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그는 1936년 발표한 “계산가능수와 결정문제에 대한 응용에 관하여(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라는 논문에서 튜링 머신을 처음 거론하는데, 이것이 힌트가 되어 후대 컴퓨터라는 모델이 탄생하게 이른다.

컴퓨터의 초기 모델링을 창안해낸 그는 1912년생 영국인이었다. 193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 입학해 수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1935년 확률론 계산에서 한계중심정리에 관한 학위논문으로 킹스 칼리지 특별 연구원이 되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1936년)는 했지만 줄곧 영국에서 거주한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38년 9월 브렛칠리 정부 암호학교 GCCS(현 GCHQ)에 들어갔고, 1939년 9월 4일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Hut 8의 책임자가 되어 폴란드 정보부에서 제작한 에니그마 해독기 Bomby를 개선한 The Bombe를 개발했다. 이런 경험에서 만든 계산이론은 후일 영국에서 개발되는 콜로서스(프로그래밍 가능 전자 컴퓨터)의 기술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2차 대전 승전의 핵심 키를 쥐고 있던 인물 가운데 한 명일 정도로 그는 천재적인 수학도였다.

영국인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은 ‘컴퓨터=미국’이라는 등식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하지만, 정작 컴퓨터라는 아이디어는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바로 여기서 오늘 글의 질문이 시작된다. 컴퓨터라는 개념을 착안해낸 영국이 정작 이후 컴퓨터 산업에서는 거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 그 배경을 추적해보고자 함이다.

지금 어느 누구도 컴퓨터를 떠올리면서 영국을 거론하지 않는다. 2차 대전 참전을 고도의 암호해독 기술 노하우를 취득했음에도 영국은 21세기 컴퓨터 산업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컴퓨터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앨런 튜링이라는 천재적인 인재를 정부 기관에 두고 있었지만, 영국은 컴퓨터사의 족적에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일까?

애니악보다 빨랐던 콜러서스 마크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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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최초의 디지털 전자식 컴퓨터 하면 1946년 개발된 미국의 애니악을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1941년 독일이 개발한 Z3, 혹은 가 1943년 개발한 영국의 콜러서스 마크 1호라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위키피디아를 참조할 것) 후자는 군사 기밀에 붙여져 뒤늦게 공개된 탓에 최초 컴퓨터로 인식되는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39년 시험모델이 제작돼 1942년 테스트에 성공한 John Vincent Atanasoff의 ‘Atanasoff–Berry Computer’ 또한 최초의 컴퓨터로 거론되고 있지만, 프로그래밍이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 사례와는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영국은 2차 대전 당시 및 전쟁 직후까지 컴퓨터 개발에 가장 앞선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영국은 전후 컴퓨터 산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나는 이를 ‘찰스 다윈의 저주’에서 시작됐다고 말하고 싶다.

전쟁이 끝난 뒤 1945년 10월, 앨런 튜링은 영국국립물리학연구소(NPL)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그는 영국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 컴퓨터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그가 개념화했던 보편적 기계을 직접 만들어내겠다는 구상이었다. ACE(Automatic Computing Engine) 프로젝트. 이를 위해 그는 1946년 2월 19일 구체적인 프로젝트 제안서를 위원회에 제출했다.

그의 제안서에는 구체적인 컴퓨터의 구성에 관한 다이아그램과 1만2200파운드에 이르는 비용 등이 명시돼있었다. 대략 속도는 25 KiB. 대단히 야심찬 시도였다. 하지만 결국 반려당했다. 애초부터 과학행정의 달인이었던 찰스 다윈경은 지원해줄 의사가 없었던 듯하다. 결국 그는 연구소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게 된다.

영국 컴퓨터 산업의 걸림돌 찰스 다윈경과 처칠

국제과학칼럼니스트인 이재구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행히도 다윈 경은 그의 설명에 대해 반박만 할 뿐 그를 지원해 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매번 새로 하드웨어를 만들 필요가 없는 기기를 만들겠다는 튜링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허공으로 사라졌다. 누구나 다 50년 이후에나 이뤄질 일을 튜링처럼 생각해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찰스 다윈경의 이같은 태도 이면에는 ‘블레츨리 파크’를 비밀에 붙일 것을 명령한 영국의 수상 처칠이 자리잡고 있다. 블레츠키 파크는 영국의 비밀 첩보 기관이 위치한 장소이지만, 영국의 국가기밀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대명사로 쓰여왔다. 이곳에는 영국 정부의 암호해독팀과 라디오 전파 차단 및 해킹을 위한 ‘Station X’ 도 자리잡고 있었다. 전쟁 당시 연합군 내부에서도 블레츨리 파크는 비밀에 붙여져있을 정도였다.(1974년에야 이 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앨런 튜링의 노력에도 그는 정부로부터 외면 받았고 특히 동성애 금지법에 의해 결국 독이 든 사과(청산가리가 묻은)를 먹고 자살한다. 1954년 그의 나이 42세. 영국의 컴퓨터 산업의 메카로 이끌 수 있었던 기회는 정부의 철저한 기밀 정책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으로 인해 날아간 셈이다.

일각에선 애플 로고가 앨런 튜링의 독사과를 의미한다는 설이 제기됐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그런 사실까지 염두에 두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그러지는 않았다”고 답변했다.

전후 ‘실리콘 팬’의 실패

앨런 튜링의 독보적인 연구 성과로 컴퓨터 산업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는 또다시 찾아왔다. 캠브리지 단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이었다. 영국 정부는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캠브리지대학 인근을 첨단 산업 단지로 조성하고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혁신의 땅’으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하지만 이곳도 1980년대를 지나면서 성과 없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Saxenian에 따르면 캠브리지 산업 단지의 형성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케임브릿지 산업 단지의 형성은 3단계로 나누어진다. 그 첫번째는 1960년대 말 케임브릿지 대학의 실험실로부터 독립하여 만들어진 3개의 회사가 그 주축이었다. 이들은 CAD 및 레이저 스캐너 전문회사들로서, 이 중 두 개의 회사는 미국의 회사와 합병되는 등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두번째 단계는 1970년대 말부터인데, 성공한 케임브릿지 지역의 회사 중 일부, 예를 들면 Acorn, Singclair 등의 컴퓨터 회사는 이때에 그 기원을 둔 회사들이다. 이 두 회사의 창업자들도 케임브릿지대학 실험실 출신들인데, 이들은 마이크로 컴퓨터 붐을 타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세번째 단계는 1980년대인데, 이 기간 동안 많은 기업들이 새로이 창업되었으며, 가장 활발하게 기업 활동이 이루어진 시기로 기록된다. 활발한 창업 활동의 근본 이유는 1979년 이래 대처 수상이 이끄는 영국정부의 산업 정책에 기인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벤처 자본의 풍부한 공급이었다. 기업 창업을 위한 자금의 풍부한 공급과 함께 1970년대에 시작된 기업들이 성공의 모형을 제공함으로써 많은 기업가들의 창업을 유도하였다.

1980년부터 1986년 사이에 매년 평균 30여 개의 기업이 창업되었으며, 그 결과 1978년 40여 개이던 첨단기술 기업이 1985년에는 400여 개로 증가하였는데, 이를 당시 수상의 이름을 따라 Thatcher 붐이라고도 한다. 반면 대부분의 기업은 산업 현장에서의 경험이 적은 케임브릿지대학의 졸업생이나 교수진에 의해 창업되었고, 그 규모는 크게 성장하지 못한 상태로 운영되었다. 기업간의 합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국내 수요 부족으로 해외, 특히 미국에서의 제품 판매를 현지 기업에 의존했던 기업들이 그 현지 기업에 의해 합병되는 사례가 많았다.”

영국 FTSE 100위 안에 이름을 올렸던 암(ARM)과 오토노미가 바로 이곳 실리콘 펜 출신자들이 창업한 기업들이었다. ARM(Acorn Risc Machine) 아키텍처를 개발한 Acorn 컴퓨터가 바로 이곳 캠브리지 과학 단지에서 1978년 창업된 회사다. 이 회사는 한때 영국의 애플이라 불렸고 지금도 모바일 디바이스 CPU의 핵심이 되고 있다. 애플은 일찌감치 Acorn과의 협업을 통해 CPU를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제작해 적용해왔다.

글 : 몽양부활
출처 : http://blog.ohmynews.com/dangun76/48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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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gun76@gmail.com

'고민하고 토론하고 사랑하고'의 운영자. 시민저널리즘, 소셜미디어, 뉴스 등에 관심이 있으며, KBS2 '임백천의 시사터치' 고정 패널, 책 집필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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