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Life (1)] 외국인 노동자가 되다

지난 7월의 일이니 벌써 넉 달도 전의 일입니다. 그날은 제주도에서 열리는 학회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김포공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갑자기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울리더군요. 이 아침에 누군가 싶어서 꺼내 봤더니, 교수님께서 전달해주신 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IBM 연구소에서 인턴을 모집함. 관심 있는 사람은 신청할 것.”

메일에는 연구소에서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이 담긴 PDF 문서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제법 양이 많더군요.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할 일이 없어진 저는 iPad를 꺼내 들고 문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개를 들었을 때, 비행기는 이미 제주공항에 내려앉은 뒤였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9월 8일 저녁, 저는 오스틴에 도착했습니다. 성적표와 이력서를 보내고, 합격 통지를 받고, 취업 비자 등 서류 수속을 밟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사이 여름은 후딱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생전 생각지도 못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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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무엇을 하고 있을까

IBM에 인턴을 간다고 하니까 몇몇 지인분들이 물으시더군요.

“IBM은 요즘 뭐 해요?”

솔직히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건, 아마도 IBM이 일반 소비자용 시장에서 손을 뗐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듯이, IBM은 몇년 전 PC 사업부를 중국 lenovo에 매각했습니다[footnote]그래서인지 제가 입사 후 지급받은 랩탑을 포함, 사내에서 사용하는 랩탑들은 기본적으로 lenovo 제품입니다. 제 멘토를 포함, mac을 쓰시는 분들도 많지만요.[/footnote]. 하지만 PC라는 물건 자체가 IBM의 손에서 탄생한 물건이다보니, 많은 소비자들 눈에는 IBM=PC 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PC도 안 만드는데 이젠 뭐 하지?” 하는 생각을 하시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네 소비자들은 직접 접하는 몇몇 회사 이외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아이폰을 어느 회사가 만드는지 아실 겁니다. 아이폰을 누가 조립하는지도 알고 계시겠죠. 하지만 어떤 회사들이 부품을 대는지, 생산설비를 판매하는지는 모르실 겁니다. 이 회사들은 기업용 상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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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Blue. IBM의 기업용 슈퍼컴퓨터 RS/6000 SP2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체스용 컴퓨터다. 1997년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 체스 챔피언을 패배시킴으로써 기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샌프란시스코 컴퓨터 역사 박물관 소장. (출처 http://flic.kr/p/4vJYbn)
IBM도 마찬가지입니다. IBM은 지난 100년 동안, 20세기 초의 기계식 컴퓨터에서부터 플레이스테이션3의 CPU에 이르기까지 컴퓨터에 관련된 거의 모든 제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1970년대 말까지 일반 소비자용 컴퓨터는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제품들은 거의 모두가 정부나 기업에서 사용되는 것들이었습니다.[footnote]덕분에 20세기 중반에는 나치 독일에 컴퓨터를 팔았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독일 제국 치하에 거주하는 유태인을 골라 내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살인자에게 칼을 팔고 정기적으로 칼을 갈아 주기까지 했다는 이야기. (관련기사 http://goo.gl/LqGYk) [/footnote].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IBM 입장에서는 PC라는 일반 소비자용 제품을 만든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일이었다는 얘깁니다. 비록 이제 PC시장에서는 손을 뗐지만, 예전부터 해왔던 기업용 제품은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일반 소비자와 접점은 별로 없지만, 매출이 천억 달러가 넘습니다.

제가 여기서 하고있는 일은…

그럼 제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제가 있는 오스틴 연구소는 전세계에 있는 11개의 IBM 연구소 중 하나[footnote]http://www.research.ibm.com/[/footnote]입니다. 하지만 제가 다 알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배치된 팀은, 기업용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관련 연구를 하는 팀입니다. 아래 글쓴이 소개에서 밝혔듯이, 저는 대학원에서 검색(Information Retrieval)을 공부했습니다. 다들 한 번씩은 들어 보셨을 듯한 google의 PageRank 알고리즘이나 Amazon.com의 상품 추천 시스템 같은 분야가 이 쪽 분야의 연구[footnote]최근에는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에 대한 연구들도 이 쪽 field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footnote]지요. 그런데 이 쪽 분야가 워낙에 대규모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 많다 보니,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코드를 작성할 일이 잦았고 또 익숙합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서도 자연스럽게 빅데이터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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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Playstation 3. 여기 사용된 cell cpu는 IBM과 Sony가 함께 개발했다. 게임기 전체에 개발진들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저는 이 [IBM Life] 시리즈를 통해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의 이야기들, 스타트업들이 한 번쯤 마주칠 법한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려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 의견을 나눠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회에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위 포스트의 내용은 글쓴이 개인의 의견일 뿐이며, IBM의 공식 입장과는 상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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