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일이란 없다. 그래서 생산성이 낮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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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http://flic.kr/p/bWhVS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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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면 누구나 그 부서에 있는 잡무를 처리하게 된다. 나도 이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회사에 처음 입사하고 맡은 잡무는 재물조사였다. 재물조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회사 일 가운데 잘해도 티가 안나는 대표적인 일이자 못했을 때 엄청나게 욕먹는 일이다. 재물조사의 가장 어려운 일은 재물리스트와 실물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점이 가장 신입사원한테 힘든 일인데, 이제 막 입사해서 수많은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물조사가 제대로 몇 년 실행되지 않으면, 재물이 망가지거나 분실해서 장부와 일치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 장부와 재물이 일대일로 매칭이 되더라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는 신입사원에게, 이런 장부와 재물의 불일치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내가 처음 재물조사를 할 때, 딱 이 상황이었다. 재물조사를 맡고 나서 며칠을 장부와 실물을 매칭하느라 힘들었다. 어쨌든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장부와 재물을 일치시켰지만, 도대체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물건이 있었다. 그 물건은 바로 ‘자동문’이었다.

자동문, 우리 부서엔 자동문이 없었다. 자동문이라고 불릴만한 건, 회사 입구에 있는 진짜 자동문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자동문은 내가 찾아야 할 자동문이 아니었다. 잔존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폐기처분하면 그만이었는데, 문제는 그 잔존가가 몇 백만원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자동문은 재물조사의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몇 백의 잔존가와, 그 행방을 아무도 모르는 물건, 그리고 누군가 이 물건의 행방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신입사원에게 이 자동문을 찾아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런 심리적인 압박에 며칠을 고생하면서 자동문을 찾았지만, 자동문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한 달이 넘게 고생한 재물조사 끝에도 그 존재를 찾지 못한 자동문은 분실처리 되었다. 재물조사가 끝나고 나서 재물조사에 참여한 직원들이 모일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자동문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실물과 재물을 일대일로 매칭하는 게 쉽지 않으니 바코드 같은 걸 도입해서 재물조사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자는 의견을 냈다. 바코드를 붙이면 스캔으로 바코들 읽어서 해당 물건이 어떤 재물인지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쉽게 재물 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이 의견을 들은 총무팀 담당자는 바코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비용이 들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시간을 갖고 도입을 고민하겠단 이야기를 했다. 오래 전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내가 회사를 떠날 때도 여전히 신입사원들이 A3용지 수십 장에 수많은 재물 목록을 출력해서 재물을 일일이 헤어리는 작업을 연중행사로 했던 것 같다.

내가 재물 조사를 처음 실시하고 거의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면 요즘엔 어떤 식으로 재물조사를 할까? 그 당시와 다른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회사에선 1년에 한 번씩 회사물정을 잘 모르는 신입사원이 A3에 수많은 재물목록을 뽑아서 회사 이곳 저곳을 뒤지며 숨어 있는 재물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가끔 잔존가 수 백만원 씩 남은 물건을 못 찾아서 며칠을 끙끙 고민하는 일이 늘 벌어진다.

회사가 처음 만들어지고 하는 일은 일정 기간 동안 수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일들, 그리고 그런 일을 인력을 들여서 한다고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반드시 자동화를 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재물조사 같은 일은, 그 업을 주관하는 부서에서 조금만 고민한다면 충분히 자동화할 수 있다. 요즘은 RFID를 사용한다면 이런 재물조사는 단 하루면 끝낼 수도 있다. 물론 RFID를 사용하는 재물조사를 도입하려면 초기 비용이 발생한다. 그 비용이 적지 않을 수 있지만, 해마다 많은 직원이 며칠동안 회사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재물을 찾기 위해 방황하느라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합치면, 아마도 RFID를 사용하는 재물조사 시스템보다 비싸지 않을까?

문제점이 많은 업무가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선이 잘 되지 않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그 일을 하는 담당자가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 그 일은 그냥 그렇게 하는 거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변하지 않는 건 없다라는 명제뿐이다. 즉 세상에 어떤 일도 원래 그런 일이란 없다.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를 다시 겪지 않겠다,란 단순 명쾌한 자세를 견지한다면, 일이란 극단으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세상엔 원래 그런 일이란 없다. 그런 믿음 때문에 낭비하지도 않을 돈을, 보이지 않는 지출을 한다. 그래서 원래 그런 일 때문에 생산성만 낮아질뿐이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638

About Author

/ root@talk-with-hani.com

신승환은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 관리, 프로세스 컨설팅 등의 업무를 십 년간 수행했으며, 현재는 차량용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읽은 것과 생각한 것을 블로그(http://talk-with-hani.com)와 트위터(http://twitter.com/talkwithhani)에 꾸준히 남기려고 노력한다. 지은 책으로는 '시지프스를 다시 생각하다',‘겸손한 개발자가 만든 거만한 소프트웨어’와 ‘도와주세요! 팀장이 됐어요’가 있으며, 다수의 IT서적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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