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비용의 위험성과 스타트업의 의사 결정

‘공간건축’이라는 곳이 있다. 꽤 유명한 건축사무소인데, 무엇보다 대학로 가는 길에 있는 고즈넉한 본사 건물로 유명한 곳으로, 나도 작년 봄에 대학로 산책 가던 길에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신사의 품격 촬영지로도 쓰였다고 한다.)

공간_건축_본사

<2012.04, 대학로 산책 길에 찍은 ‘공간건축’ 본사 건물>

며칠전 중앙일보에 이 건축사무소가 부도가 났다는 기사(공간건축 부도 충격 … “건축 살길은 전문화” 한목소리)가 실렸는데, 사실 이 건축사무소 뿐만이 아니라 국내 건축사무소 시장 상황 전체가 안좋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사 중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대형설계사무소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국가 균형발전정책 등으로 정부의 공공사업 발주가 이어졌고, 주택시장의 활황으로 아파트와 상업건물 건설도 증가했다. 설계사무소들은 대형사업을 따내기 위해 앞다퉈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공공건물 발주가 급격히 줄어들고, 아파트 시장도 냉각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고정비용(고정자산)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루어졌을 게 틀림없는데, 이는 잘나가던 회사를 망하게 하는 굉장히 흔한 실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실제로 세계대전 시절 단추 같은 군수 물자를 생산하던 회사들도 생산 시설을 어마어마하게 늘렸다가 전쟁 후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부도, 세계경제대공황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상대적으로 회사의 규모가 작은 IT 스타트업의 경우 고정비용 관리에 대해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1. 쓸데없이 비싸고 넓은 사무실과 인테리어
  2. 구성원에 대한 과도한 급여나 복지 시스템
  3. 성급한 인력 확대 (IT 회사라면 비개발 분야)

1, 2는 너무 뻔한 이야기인 것 같고 3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바로 스타트업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다음과 같은 상황들 때문이다.

상황 A) 이 사람을 지금 뽑아야 할까?

현재 우리 팀은 개발진을 포함, 역할별 인원이 완벽하게 준비된 6명의 초기 스타트업으로 당분간 충원 계획이 없다. 그런데 전부터 알고 있던 굉장히 유능한 인재(현재 연봉 높음)가 최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합류해도 현재 프로젝트 진행 단계에서는 할 일이 크게 없어서,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고 해도 본인의 실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6개월 정도 후가 될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쉽지 않은 훌륭한 인재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기존 멤버에 준하는 대우를 해 줘야 해서 고정비용(인건비)이 15% 이상 증가하게 될 것이다. 입사 제안을 해야 할까?

상황 B) 이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할까?

현재 우리 팀은 10명 정도 되는 팀으로, 진행 중인 현재 프로젝트가 ‘대박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IT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외부 제안이 들어와서 사업성을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성공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판단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명이 필요한데,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때문에 우리 팀 내에서는 여력이 없는 상황으로 동시에 추진할 경우 기존 사업의 속도가 떨어질 것이다. 외부에서 인력을 선발할 경우 최소 6개월 정도는 신규 인건비를 100%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일을 진행해야 한다. (즉, 신규 프로젝트로 돈이 들어오는 시기는 보수적으로 6개월 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까?

 

경험상 스타트업이라면 굉장히 빈번하게 접하는 의사결정 상황인데, 당연히 정답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을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할 수 밖에… 다만, 경험이 좀 쌓이다 보니 B와 유사한 같은 상황에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대안을 탐색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바로 ‘외주 업체’의 활용이다.

IT 회사 대표의 경우 외부 개발진과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 사실 나도 그렇다 – 경우에 따라 외부 개발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사업의 훌륭한 기술인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하게 되었다.

B의 상황에서 외주 개발팀에게 업무를 의뢰할 경우,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을 것이다.

  • ‘불확실한’ 고정 비용의 최소화: 인력을 선발할 경우 프로젝트가 중단된 경우에도 그 인력을 계속 유지해야 하므로 예상치 못한 고정 비용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반면, 외주 개발의 경우 계약 비용 이상으로 돈이 나갈 경우는 적음
  • 신규 인력 선발에 신경을 안 써도 됨: 팀에 합류하는 사람들이라면 ‘실력’ 외에도 기존 팀웍을 헤치지 않기 위해서 ‘성향’ 같은 요소도 많이 봐야 하는데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음, ‘시간’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절대적인 무형의 자원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 역시 큰 장점

사업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순히 초기 스타트업 뿐만이 아니라 큰 투자를 받거나 BEP를 돌파하거나, 심지어 상장한 회사들도 이런 고정 비용의 위험성에 대해서 간과하게 되면 결국 ‘방만한 경영’의 결과로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사업의 시기에 상관 없이 늘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글: 조민희 (Founder & CEO at Pristones)
출처: http://ingray.net/?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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