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 마피아

아마 많은 사람이 “페이팔 (Paypal) 마피아”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페이팔 창업자들과 직원들이 후에 그들의 인맥과 경험을 바탕으로 Tesla, Linkedin, YouTube, Yelp와 같이 훌륭한 스타트업을 세우고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런 말이 생긴 것이다 (페이팔 마피아에 관해서는 조성문님이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있으니 참조). 페이팔보다 한세대 앞서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 있는 인재를 많이 배출한 회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Sun Microsystems)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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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은 2009년 경영난끝에 오라클에 인수되어 지금은 사라진 회사지만, 한때는 워크스테이션 업계를 주름잡던 정말 잘나가는 회사였다. 내가 개발자로 일할 무렵인 2000년대 초반만해도 썬 워크스테이션을 책상에 두고 솔라리스 OS 환경에서 작업하는게 보통이였다. 그당시 공학도나 엔지니어였던 사람은 썬 제품을 이런 저런 경로로 다 써봤을 거다. 꽤 안정적인 OS로 기억되는 솔라리스뿐 아니라, Java 언어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SPARC라는 자체 프로세서까지 만들던 회사였다. 암튼 내 기억에 2000년대 전반부까지만 해도 썬은 정말 잘나가는 회사였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고 NeXT를 창업하며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는 동영상이 있는데, 거기에서 잡스는 NeXT가 어떻게 썬과 차별화되는지, 어떻게 썬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전략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디오 링크 – 추천). 그만큼 업계의 벤치마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썬은 확실하고 훌륭한 회사였다. 훌륭한 회사뒤에는 항상 훌륭한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지금 텍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과거 경력을 보다보니 유난히 썬에서 일했던 사람이 많고, 그들간의 인연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서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럼 각설하고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자.

앤디 벡톨샤임 (Andy Bechtolsheim): 썬의 첫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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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의 공동 창업자는 모두 4명이지만, 이사람이 1호 창업멤버라고 할 수 있다. 독일태생인 Bechtolsheim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실리콘 밸리로 건너와 인텔에서 일하다가, 스탠포드 대학교의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SUN (Stanford University Network – 알고 보면 약간 촌스런 이름)이라는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이것을 발판으로 창업을 하기로 결심, 곧 학교를 떠난다. 이렇게 해서 1982년 썬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그는 직원번호 1번을 차지하게 된다. 그는 95년 썬을 떠날때까지 하드웨어 디자인을 총괄하는 일을 하였고 썬의 성공으로 많은 돈도 벌게 되었다. 그 후로 투자 활동도 많이 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투자는 98년 두명의 스탠포드 대학원생이 찾아와 검색엔진회사를 창업하겠다고 해서 십만불짜리 수표를 써 준 것이였다 (수표를 끊어주고 이 셋은 자축하러 버거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회사는 다름아닌 구글이고, 그가 투자한 십만불은 나중에 몇십억불의 가치로 늘어났으니 아마 벤처 투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중 하나일 것이다. Bechtolsheim은 지금도 엔젤 투자, 강연 활동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

비노드 코슬라 (Vinod Khosla): 썬의 창업자 & 벤처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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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osla는 지금은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더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그는 썬의 창업멤버였고 CEO였다. 그는 인도의 IIT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Biomedical 공학 석사를 한후, 실리콘 밸리로 건너와 스탠포드에서 MBA를 마쳤다. 그리고 나서 Daisy Systems라는 반도체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던중 스탠포드 박사과정 학생인 Bechtolsheim을 만나 썬 창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는 썬 초창기인 82년부터 CEO로 일하다가 비교적 짧은 기간인 2년만에 회사를 떠나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86년 그는 실리콘 밸리 최고의 명성의 Kleiner Perkins VC에 합류하고, 여기서 Juniper Networks 같은 곳에 투자하여 큰 성공도 거두고 명성도 쌓게 된다. 2004년 Kleiner Perkins에서 나와서 자신의 이름을 딴 Khosla Ventures라는 VC를 만들어 독립하였고, 지금도 클린텍, IT 분야등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가 이전에 어디선가 강연하던 내용중 인상적인 말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썬에서 CEO로 일할때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자신은 CEO라기 보다는 “glorified recruiter (허울좋은 리크루터)”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타이틀은 CEO 였지만 시간의 반이상은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발벗고 뛰어다니는데 썼다는 말이다. 스타트업 초기에 좋은 인재 영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걸 그는 잘 알고 있었던거다.

스캇 맥닐리 (Scott McNealy): 썬의 창업자 이자 오랜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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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Nealy는 Vinod Khosla의 스탠포드 MBA 클래스메이트이자 룸메이트였다. 스탠포드 졸업후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Khosla와의 인연으로 Bechtolsheim과 의기투합하여 썬을 창업하게 된다. 그는 84년 Khosla로부터 CEO자리를 물려받은 후 2006년까지 무려 22년 동안 썬을 이끌며 키워온 인물이다. 썬이 정말 잘나가던 시기에 CEO였으니 그만큼 주목받는 인물이였고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사업가 였다고 할 수 있다. 썬 이후의 행보는 잘 모르겠다.

빌 조이(Bill Joy): 썬의 창업자이자 천재 프로그래머

*NOT FOR OTHER PHOTO AGENCIES*

사진만 봐도 보통사람이 아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Bill Joy는,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 등장해서 더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제대로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있다는 이론의 예로 등장하는 사람인데, 천재 프로그래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버클리 박사과정에 있는동안 모든 유닉스 시스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BSD Unix의 주 개발자였다 (여러분이 쓰고 있을 iOS나 Android의 밑바탕은 모두 리눅스이고, 리눅스의 시초는 유닉스다). 유닉스 환경에서 대표적인 텍스트 에디터인 vi를 주말만에 썼다는 전설도 있고, 대학원 시절 인터넷 프로토콜인 TCP/IP를 혼자 만들기도 하였다. 암튼 Bill Joy는 다른 세명의 창업자보다는 6개월 정도 늦었지만 버클리를 떠나 썬에 공동창업자 자격으로 합류하게 된다. 그는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와 버클리 대학원 동기이자 친한 친구였는데, 이런 인연으로 에릭 슈미트를 후에 썬으로 데리고 왔고, 에릭 슈미트는 훗날 CTO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빌 조이는 2003년 썬을 떠난후 Vinod Khosla처럼 Kleiner Perkins에 합류하여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 썬의 CTO, 그리고 구글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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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Bill Joy가 대담자로 나온 한 행사에 간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웃라이어를 막 읽었던 차라, Bill Joy에 대한 존경심과 호기심이 가득해서 거의 맨 앞줄에서 눈을 부릅뜨고 경청하였다. 행사가 끝날무렵 행사장 맨 뒤켠에서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낯익은 사람을 봤다. 다름아닌 구글 CEO인 에릭 슈미트였다. ‘아니 이런 거물 아저씨가 연사도 아닌데 여기는 왜 왔으며, 그것도 그냥 뒤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다니!’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빌 조이와 에릭 슈미트간의 인연을 몰랐었는데, 나중에 두사람이 대학원 친구였던 사실을 알고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옛친구 얼굴도 볼 겸 잠깐 들른 것이리라. 에릭 슈미트는 작년 한국 연세대에서 강연할때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빌 조이와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암튼 그는 친구따라 썬에 가서 승진을 거듭하여 CTO자리에 까지 오르고, 후에 회사를 옮겨 Novell의 CEO로 일하다가, 구글의 CEO가 되어 초대박을 터뜨린 인물이다. 아마 에릭 슈미트가 Larry Page와 Sergey Brin과 연결된 것도, 썬의 창업자이자 구글의 투자자였던 Bechtolsheim이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캐롤 바츠 (Carol Bartz): 썬의 부사장, 그리고 야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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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tz는 실리콘 밸리의 흔치 않은 여성 CEO로, 공개 석상에서 f- word 같은 폭탄도 서슴없이 날릴 정도의 거친 입담으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그녀는 썬에서 초창기부터 10년간 일했고 나중에는 Worldwide Field Operation (주로 영업, 기술지원 조직)을 총괄하는 부사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92년에 AutoDesk의 CEO로 옮겨가며 커리어 전성기를 맞게 된다. AutoDesk의 CEO로 재직한 14년 동안 회사 매출을 $300M에서 $1.5B 까지 끌어올리는 업적을 세웠다. Bartz는 AutoDesk의 CEO로 부임하기 며칠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암수술후 7개월간 그 험난한 화학약물치료(chemotherapy)를 받으면서도 풀타임으로 일하며 암을 이겨낸 이야기는 실리콘 밸리에서 유명하다. 2009년, 난관에 봉착한 야후의 CEO로 부임하지만 회사를 되돌리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2011년 물러나게 된다.

존 도어 (John Doerr): 썬의 투자자이자 전설적인 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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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도어는 썬에서 직접 일하지는 않았지만, 썬의 초기 투자자이다. 그는 VC업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전설적인 인물로, 그가 속한 Kleiner Perkins VC가 오늘날 최고 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성공한 벤처투자를 다 열거하려면 글이 좀 길어지겠지만, 초대박에 속하는 회사만 몇개 꼽으라면 썬,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 등이 있다. 존 도어는 82년 썬에 초기 투자를 하게 되어 크게 성공하게 되고, 이 인연으로 맺어진 썬의 창업자였던 Vinod Khosla와 Bill Joy를 후에 자기 회사로 영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에 구글에 투자하게 되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데, 여기에도 썬에서 맺어진 인연이 위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앞서 말한대로 썬의 창업자 Bechtolsheim가 구글의 첫 엔젤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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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 마피아”라는 말은 내가 그냥 지어낸 말이다. 위에 열거한 인물들은 지금 대부분 50대 후반 ~ 60대로, 30대~4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루는 페이팔 마피아보다는 한세대 윗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반쯤 은퇴한 사람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썬이라는 하나의 훌륭한 회사만 봐도, 회사의 성장과 성공을 통해 많은 인재와 부자가 나오고, 그들간의 끈끈한 네크워크도 만들어지며, 그들이 후대 창업가들에게 투자 및 이런 저런 영향과 도움을 주는걸 보면, 실리콘밸리의 선순환 구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것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썬 창업초기의 창업자 4인방 – (왼편부터) 비노드 코슬라, 빌 조이, 앤디 벡톨샤임, 스캇 맥닐리
썬 창업초기의 창업자 4인방 – (왼편부터) 비노드 코슬라, 빌 조이, 앤디 벡톨샤임, 스캇 맥닐리

글 : 윤필구
출처 : http://j.mp/WwNm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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