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깊이 –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차이

Source : http://flic.kr/p/cCnt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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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두 개의 회사에 투자를 집행하였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실리콘밸리의 창업 환경과 투자 환경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지난 5개월 동안의 투자 집행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신뢰 사회

금번 투자를 집행하면서 재미있었던 점 하나는 ‘실리콘밸리 기업은 상장 준비 단계 정도가 아니라면 대부분 투자 시 회계 실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는 점 이었습니다. 이번에 투자를 집행한 한 회사의 경우, 매출 규모도 상당하고 20여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 이었음에도, 투자 전 회계 실사의 필요성을 그다지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함께 일했던 실리콘벨리에서 잔뼈가 굵은 변호사분께 회계실사 없이 투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를 물어보니 “이정도 사이즈의 회사에서 회계 이슈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실제로 본 적도 없다. 또한, 회사의 재무담당자들도 실리콘밸리 생태계에서 계속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사람들이라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진행한다. 문제 없을 것이다” 라고 하더군요.

회사와 은행과의 관계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투자 검토 중 한 회사에서 디폴트 상태인 단기 부채가 발견되었는데요,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회사에서 저희에게 전혀 언질를 주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자칫 딜 브레이커가 될 수도 있는 긴장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이것에 대해 걱정하는 저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실리콘밸리의 은행들은 스타트업에 대한 대출에 익숙하다. 약간의 투자 마인드를 가지고 업무를 집행하기 때문에 설령 회사가 상환 연장 조건을 못 맞추었다 하더라도 회사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면 바로 상환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은행과 관계가 매우 좋기 때문에 현재 성장중인 회사의 사정을 잘 설명하면 은행에서 이를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 없을 것이다. 또한, 이곳의 은행들은 벤처캐피탈에 대한 신뢰가 크기 때문에 만약 이번 투자가 집행된다면 은행에서도 우리 회사를 전혀 문제 없는 회사로 생각 할 것이다” 라고 하더군요. 무시무시한 국내 시중 은행의 상환에 대한 태도와 매해 정부로부터 빡빡한 건전성 평가를 받는 벤처캐피탈에 대한 국내의 사회적 인식에 대비했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일 들을 겪으면서 실리콘밸리에서의 사업과 투자는 단단한 신뢰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좁은 동네에서 한평생 벤처하면서 앞집 뒷집 다 아는 사람들끼리 뭘 속이겠냐? 라는 단순한 이유 일 수도 있고,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혁신과 성공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온 생태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됐건, 이곳 사람들은 법적인 문제, 제도적인 문제 크게 고민 안하면서 오직 사업의 본질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기반은 ‘상호 신뢰’ 였습니다.

신뢰의 의미

‘신뢰’의 경제학적 가치는 오래 전 부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되온 부분 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 국가의 경쟁력은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신뢰란 공동체 구성원들이 보편적인 규범에 기초해 규칙적이고, 정직하게, 그리고 협동적으로 행동할 것을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 역시 개인과, 조직, 시장, 사회 전반에서 신뢰 수준이 내려갈 수록 속도는 내려가고 비용이 올라간다고 지적하면서 신뢰의 핵심 요소로 ‘성실성’,’의도’,’재능’,’성과’를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국내 99.9%의 벤처캐피탈과 기업이 정직하고 신뢰감 있게 사업과 투자를 영위하고 있음에도 생태계 형성 초기의 몇몇 불미스러운 사태로 인한 불신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제시되고 있는 정부의 창업 지원책은 기업과 투자사를 생태계의 독립적인 구성원으로 보기 보다는 감시하고,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할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합니다. 현재 중기청, KOCCA 등 관련 기관에서 창업 진흥을 위한 지원책은 100여개에 육박하고 대부분은 인력, 자금의 새부적인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책입니다. 투자 부문 역시 올해 모태펀드, 정책금융공사 등을 통한 출자가 더욱 확대 될 전망이며 LP로서 정부 기관의 참여와 GP에 대한 관리 감독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분위기 입니다.

금융기관과 회사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만 여전히 상당수의 회사들이 금융기관을 언제 회사를 매각할 지 모르는 잠재적 리스크로 인식하고, 금융기관은 회사를 원금 손실을 가져다 줄 지 모르는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계약서의 수 많은 진술과 보장, 서로의 눈치를 보며 겉도는 이사회, 진실된 이야기를 나눈다는 핑계하게 벌어지는 술자리가 모두 신뢰의 부재로 인한 비용입니다.

‘ 네트워크를 만들자’,’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자’, ‘M&A를 활성화 해야 한다’ 등등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 하기 위한 수 많은 주장들이 있습니다만 그 근간은 결국 정부-금융기관-기업 간 신뢰의 회복입니다. 신뢰란 결국 ‘내비두는 것’ 에서 출발합니다. 정부도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금융기관은 회사의 도덕성과 실력을 믿고, 회사는 금융기관의 도덕성을 믿고 서로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 : 위현종
출처 : http://jasonwi.com/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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