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체를 캠퍼스로, 순수 창작 예술대학 ‘소프트 유니브’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를 캠퍼스로 삼아 순수 창작 예술대학을 설립하려는 이들이 있다.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ICT(정보통신기술)를 기반으로 한 아이템들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예술과 창작자를 콘텐츠로 하여 종합예술강좌 서비스를 시작하는 ‘소프트 유니브‘가 바로 그 주인공. 프랑스에서 8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진짜 예술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왔다는 예술가이자 예술교육가인 류재훈 소프트유니브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를 위한 사전모임에서 오갔던 이야기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울 전체가 캠퍼스가 되는 순수 창작 예술대학을 만들겠다’는 계획과 ‘홍대, 그리고 홍대 앞 미술학원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는 파격적인 이야기였다. 이런 꿈을 실제로 이루고자 하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지 각자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좌: 류재훈 대표, 우: 최동인 작가
좌: 류재훈 대표, 우: 최동인 작가

류재훈 : 순수미술 전공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예술에 대해 좀 더 깊이 배우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 프랑스로 떠났다. 노력만 하면 학비에 대한 부담이 없는 교육환경과 중요한 시대에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8년하고도 반 정도를 지냈고, 귀국한 뒤에는 꾸준히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하고 동시에 강사로도 일하면서 그림그리기를 가르치고 소개해왔다.

보통 유학생활 8년 반이면 박사는 못해도 석사까지는 하지 않았겠나 하는데 나는 8년만에 겨우 학부를 졸업했다. 이 기간 동안 다닌 학교가 순수미술 세 곳, 미술사 한 곳, 신학대학 한 곳 이렇게 총 다섯 곳이다. 졸업에 대한 의무감보다 여러가지 다양한 경험에 대한 욕심이 컸기 때문이었는데, 이 때의 경험이 지금 내가 소프트 유니브라는 하나의 학교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그 많은 대학을 전전한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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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인 : 만화가이고, 사진도 찍고, 책도 쓴다. 만화가 그리고 싶어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문하생 생활을 하며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다. 몇 년 전까지는 학습만화라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들도 그렸는데 아무리 책이 잘 팔려도 내 스스로 관심과 애정이 잘 가지 않는 부분을 만화로 그린다는 게 많이 힘들었다. 그 때부터 틈틈히 사진을 찍으면서 온전히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사진으로 풀어내는 경험을 통해 큰 힘을 얻게 되었다.

2010년, 아내가 그림을 그리고 내가 글을 써 함께 완성한 작품인 ‘용산개 방실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함께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곧 개교할 소프트 유니브에서는 사진 수업을 맡아 진행할 예정이다.

순수 창작 예술대학 ‘소프트 유니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류재훈 : 이번에 개교하는 ‘소프트 유니브’는 작년부터 운영해온 ‘소프트 아카데미 와‘라는 예술강좌의 확장판이다. ‘서울 전체를 캠퍼스로 하는 순수 창작 예술대학’을 모토로 그리기, 사진, 영상촬영과 편집, 미디음악, 연기,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개설하여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강사진 구성 및 커리큘럼 기획은 이미 완료가 되었고 이번 학기 중간부터는 미술사에 대한 심도깊은 수업도 추가된다. 별도의 물리적인 캠퍼스는 없으며, 애플 공인 트레이닝 센터, 스페이스 노아를 비롯한 다양한 공간들과의 협약을 통해 캠퍼스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각 수업을 담당하는 강사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고 제공할 콘텐츠들이다. 강의라는 것은 결국 강사의 프로필과 커리큘럼이 아닌 그 사람의 세계와 경험, 생각, 그리고 가치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짜놓은 천편일률적인 커리큘럼에 아무 강사를 끼워넣는 것이 아니라 그 강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배우는 사람에게도 강사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프트 유니브는 국내 예술 교육 환경에 대한 문제점으로부터 시작된 아이디어라고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부분이 어떻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는가?

류재훈 :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누구나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을 가야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학진학이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미대에 가야하고, 미대에 진학하고자 미술학원에 들어갔을 때 학생은 학원이 자신의 정서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취향 등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작년에 홍대에 입학한 선배의 그림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리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렇게 개인의 창작물이 존중받는 경험보다는 경쟁과 평가를 통해 우위가 가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갈수록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고,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창작자가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너무나 치명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류재훈 퍼포먼스
류재훈 퍼포먼스 , 1998
‘우리가 그린 문으로 우리가 나갈 수 있을까’

해외의 예술 교육 환경 중 롤모델로 삼을 만한 예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는가?

류재훈 : 프랑스가 여러가지 면에서 부럽다. 프랑스에서는 대학교육도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대체로 모든 대학이 국공립이며, 첫 학기 20-30만원의 등록비용을 제외하고는 학비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이기 때문에 제공받는 혜택이 상당한데 예를 들어 대중교통의 경우 26세 미만의 학생은 반값으로 교통카드를 구매할 수 있고,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은 거의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을 이름 대신 파리 1대학, 8대학 이런 식으로 숫자를 붙여 부르고, 학교 간 서열이 없다. 본인이 미술을 전공하길 원한다면 미대가 있는 1대학과 8대학 중 하나를 골라 진학하는 식이다.

또 생각해볼만한 것 중 하나가 프랑스의 경우 예술교육을 모든 학문의 기초로 보고 정책적으로 초중고부터 어린 학생들의 예술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창작자의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자발적인 탐구방법을 먼저 가르친 후 그 관점에서 언어, 수학, 그리고 역사와 같은 다른 과목들로 학습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식으로 전체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예술수업에서는 학생들의 결과물을 평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신의 결과물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나 이외에 평가를 하는 사람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이는 창작활동을 하면서 타인을 의식하도록 만들어 진정한 창작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나면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 함께 그 그림을 보며 대화를 통해 그림을 읽는 방법을 배우고, 그림을 그린 학생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창작물을 매개로 한 소통까지 학습하게 된다.

예술과 생산성, 그리고 경제적 가치 사이의 관계는 늘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소프트 유니브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류재훈 : 왜 예술가들이 살기가 어려울까? 이것 역시 예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점의 문제일 수 있다. 예술은 사치고, 내 삶과 뒤떨어져 있고, 특정한 교육을 받거나 엄청난 소질을 타고난 사람들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들이 예술가들이 더 할 일이 없어지도록 만든다고 본다.

소프트 유니브가 출발한 문제의식 역시 이러한 선입견들을 만드는 현재의 예술 교육 방식에 있다. 현재의 교육방식은 그리기를 하나의 기술로로서 가르치는데, 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서 우열이 존재하는 것이고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은 각기 다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또 좋은 일인데 미대 진학을 위해 수많은 학생들이 똑같은 석고상을 보고 똑같은 스케치를 하게 만들고, 형태와 명암을 실제에 가깝게 묘사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오해를 갖도록 만든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그림이 실제의 형태와 똑같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위축되고 괴리감을 느끼게 되면서 예술과 멀어지게 된다.

소프트 유니브가 하는 일은 한 마디로 ‘예술과 사람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이 거리가 점차 좁아지면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여러 사회문제가 자연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정서와 자기만족감,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생산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동 커뮤니티의 형성과 다양성의 확장으로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지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동인 : 짱구라는 일본 만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 만화가들에게 준 크나큰 혜택이 있다. 실제와 똑같지 않고 마치 대강 그린 듯한 그런 그림도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잡지사에 그런 그림을 가져가면 바로 거절당했다. 만화가들조차도 ‘그림은 이래야 해’, ‘데셍이 정확해야 해’와 같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인데 이런 변화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좌: 짱구는 못 말려, 우: 만화가 강풀 https://twitter.com/kangfull74
좌: 짱구는 못 말려, 우: 만화가 강풀 https://twitter.com/kangfull74

사실적으로 잘 묘사한 그림은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그림들 중 일부일 뿐이다.

순정만화, 아파트, 26년과 같은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만화가 ‘강풀’도 마찬가지다. 많은 곳에서 거절당하던 그의 그림이 지금은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는가. 혹자는 강풀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는데 그건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이 아니다. 한 컷 안에 그 컷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잘 풀어내고 또 다른 컷과 절묘하게 이야기를 연결시켜 내는데, 이런 것이 바로 잘 그린 그림이지 그저 실제 형태와 똑같이 그려낸 데셍이 잘 된 그림이 좋은 그림은 아니라고 본다.

경영과 예술, 이 두 영역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법인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비즈니스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보는데 이 부분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류재훈 : 소프트 유니브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콘텐츠과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람과 제공받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갈 작품들이다. 나는 이제까지의 관련경험을 토대로 이 부분에 집중해왔고 또 집중할 계획이며, 경영에 관련된 부분은 이에 대한 지식과 경험 모두가 있는 팀원과 연결해서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대표가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철저하게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학생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 동시에 수익구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고 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박리다매와 재능기부라는 이름의 착취이다. 사람 중심의 콘텐츠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정당한 수익 분배와 합리적인 경영 구조가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 과거 소프트 유니브와 비슷한 프로젝트가 국내에서 여러 번 시도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낮은 수익성과 체계적이지 못한 경영방식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모였다고 해도 일정한 수익과 환경이 보장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지속되기 힘들고 팀이 와해되는 것은 당연하다.

소프트 유니브의 향후 계획을 듣고 싶다. 현행 교육법상 소프트 유니브가 학교설립 인가를 받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현재 3년 안에 소프트 유니브를 정식 대학으로 설립하는 것이 목표이다. 지금은 여러 공간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앞으로 이뤄질 수업에 필요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이를 차근차근 현실화시키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정식 학교 설립인가에 대해 계속 알아보고 있는 중이고, 이 부분이 어려울 경우 프랑스를 비롯한 기타 해외 예술대학과 협력관계를 맺는 방법, 협력학교의 학생그룹과 소프트 유니브 학생 간의 온/오프라인 연계를 통한 협업 프로젝트 등 다양한 대안을 모색 중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류재훈 : 소프트 유니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창작자로 이해하게끔 돕고 싶다.

우리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조급하지 않을 뿐이다. 철저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우리만의 페이스로 동력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최동인 : 얼마 전에 외부의 요청으로 사진을 주제로 한 강연자리에 나갔는데 문득 내가 지금 다른 사람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을 추러 가긴 갔는데, 장소도 그렇고 청중들도 그렇고 춤추는 사람을 불러만 놓았지 모든 장단이 엇박자였다. 지금 이 사람들은 굳이 ‘나의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무슨 춤을 추든 그냥 이 시간을 때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힘이 빠졌다.

이와는 반대로 류재훈 대표를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소프트 유니브에서는 멋지게 내 춤을 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모든 무대의 세팅이 완료되어 있고 강의와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준비가 놀라우리만큼 철저하게 되어 있었다. 마치 ‘당신은 와서 당신의 춤을 추기만 하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나는 더 열심히 춤 연습을 해서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에서 최고로 멋진 춤을 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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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훈 : 9월 14일 소프트 유니브 개교 기념 행사가 스페이스 노아에서 열린다. 소프트 유니브에 관심있는 모든사람들을 위한 자리이며, 작품 전시와 함께 소프트 유니브에서 앞으로 진행될 강의를 미리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소프트 유니브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softuniv

 

도유진 youjindo@venturesqua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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