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위기관리와 유리턱 현상

오랫만에 블로그를 위한 글을 써봅니다. 2015년에는 예전 같이 블로그만을 위한 글들을 종종 정리 해 올려 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유리턱(Glass Jaw)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이 유리턱이라는 개념은 원래 권투경기에서 사용되는 속어라고 합니다. 덩치는 크고 싸움을 잘하게 생긴 선수인데, 쬐그만 선수에게 한방 제대로 맞으면 나가 떨어지는 그런 선수를 보고 ‘유리턱’이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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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념을 위기관리에 사용한 선수가 있는데, 미국에서 위기관리 펌을 하고 있는 에릭 데젠홀(Eric Dezenhall)입니다. 작년에 ‘Glass Jaw’라고 이름 붙인 책을 냈습니다.

그런 개념을 기반으로 우리 기업들을 보면 최근 기업들의 위기관리에 있어 유리턱현상이 자주 발견됩니다. 그렇게 크고 위대해 보이던 회사가 ‘녹취’ 한방에, ‘소송’ 한방에, ‘몰래 카메라’ 한방에, ‘VIP의 어떤 행위’ 한번에… 그로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링위에 나가 떨어지는 현상말입니다.

이런 경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니..저렇게 큰 회사가 어떻게 저리 무력할 수 있지?”

기업이고 개인이고 ‘유리턱’들은 공통적인 내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천적 유리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말이죠.

1. 자신의 덩치와 맷집을 혼동합니다. 자신의 큰 덩치를 믿고 어떤 위기라도 만만하게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평소 자신만만해 합니다. 일부는 아예 신경도 안쓰고 있지요.

2. 자신의 취약 포인트를 평소 잘 모르고 있습니다. 유리턱은 실제 경기에 나가서 펀치를 맞아보기 전에는 자신이 유리턱이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지요. 평소 잘 모릅니다. 어디를 맞으면 바로 링위에 누울 수도 있다 하는 부분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죠.

3. 유리턱들은 평소에 취약 포인트를 강화하거나 보호하는 훈련도 하지 않습니다. 어디가 약한지 모르니 커버할 부분도 경기 때 잘 모르죠. 약한 부분을 평소 단련해서 맷집을 키우거나 정상화 시키려는 노력도 부족합니다. 항상 자신만만하거나 관심이 없죠.

4. 일부 자신의 취약 포인트를 알고 있는 유리턱들은 항상 조마 조마합니다. 유리턱 기업들도 이렇습니다.  경쟁사가 특정 위기에 휩싸이면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봐 안절부절하죠. 그러면서도 유리턱에서 벗어날 노력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경쟁사가 경기에 나가 링위에 누워 있는 것을 보면서 ‘경기가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죠.

5. 모든 유리턱은 경기 시작 후 금방 쓰러져서 재기하지 못합니다. 경기가 끝날때까지 누워만 있죠. 경기중에 다시 일어서 싸울 용기나 체력이나 가능한 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자포자기죠.

기업들이 최근 위기 발생 직후 ‘유리턱’현상을 보이는 내적인 이유는 위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인 위기관리 환경도 예전 처럼 만만하지가 않다는 건 더 큰 문제입니다. 불과 몇년전과도 싸움의 룰이나 펀치의 강도와 빈도들이 전혀 달라진거죠.

최근에 유리턱 기업들을 양산해 내는 외부의 위기관리 환경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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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라인+소셜미디어+모바일+오프라인미디어(전통적인 매스미디어)X 이해관계자들. 일명 죽음의 칵테일로 불리는 강력한 적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합니다. 20~30년전 종이신문 몇개와 싸우던 기업 홍보실을 추억 해 보면 후배들은 부러울 따름입니다. 상대적으로 그때는 한산했었을 것 같습니다. 현재는 위기가 발생하면 ‘모니터링’ 하기도 벅찹니다. 대응 이전에 현재 상황이 어디에서 어디로 번지고 있고, 얼마만큼 확산되고 있으며, 하나하나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바라보기에도 벅찹니다.

평소 위기 환경을 팔팔 끓고 있는 기름 냄비라고 상상 해보시죠. 위기의 발생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옵니다. 소줏잔 정도의 찬물을 소리없이 끓고 있는 기름냄비에 조르륵 부어보는 상상을 해 보세요. 그 이후에 벌어지는 ‘참극’이 최근 죽음의 칵테일이 만들어 내는 현상 바로 그대로 입니다. 통제요? 관리요? 대응이요? 불가능합니다. 인정하셔야 합니다.

2. 빛의 속도로 성장하는 위기의 스피드. 예전에는 일간지 마감시간에 맞춘 위기대응이 기본이었던적이 있었습니다. 일이 발생하면 회의를 집합시켜서 논의 하고 결정 해서 실행을 준비하고…이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홍보실 임원이 문제를 제기한 신문사 데스크를 만나러 고즈넉하게 택시 타고 다니던 시절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이젠 그럴 겨를도 없습니다. 헬리콥터가 아파트에 충돌한 뒤 추락 했을 때. 사고 직후 불과 10분여만에 수많은 트위터 사진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시대입니다. 말 그대로 주말 경기도 골프장에서 새벽 골프를 치는 홍보임원이 본사로 돌아와 위기관리위원회에 참석하기전 대부분의 초기 상황은 프레임이 잡혀버린다는 의미입니다. 홍보라인이나 직원들을 통한 정보라인보다 훨씬 더 빠르고 많은 정보소스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번쩍이고 있습니다. 당할 수가 없습니다.

위기 시 CEO의 의사결정을 위해 파워포인트 보고서를 만들고 있는 기업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CEO가 참석하시는 대책회의를 위해 음료수를 세팅하고 재떨이를 임원 서열에 맞추어 정렬하는 그럴 시간이 이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걸어다니시던 CEO들이 위기 시에는 뛰어 다니셔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속도를 반이라도 따라가야죠.

3. 기업의 위기는 어떤 이들의 식권(meal ticket)이 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밥을 벌기 위해 위기를 구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들의 식권을 만들어 내는 거죠. 소비자단체들을 보시죠. 기업의 문제들에 주목하는 수많은 언론들을 보십시오. 기업의 작은 흠이라도 잡으려는 소비자들은 어떻습니까.

자신그룹의 정체성을 위해 피케팅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밥먹듯 소송을 남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매운동을 자극하면서 활동하는 활동가들도 수없이 많아졌습니다. 온라인과 SNS에서는 어떻습니까? 기업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기도하는 사람들 보다, 기업이 무엇을 잘 못하나 지켜보고 항상 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온라인 공중들이 실재합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상당한 수준으로 훈련받았고, 수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 내부 위기관리팀들 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입니다. 중장기 공격 전략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언론과 법 그리고 규제기관들을 통합적으로 핸들링합니다. 준비 없이 무조건 대응하려 하다가는 한방에 나가 떨어지는 유리턱이 됩니다.

4. 여론 정서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회적 성숙도가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하게 되다가도, 어떤 때 보면 공중들이 마치 유치원 아이들 처럼 유치할 때가 있습니다.

몇몇 정보에 부화뇌동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증거나 반론을 제시해도 잘 이해도 못하고요. 금방 끓다가 금방 가라 앉는 양은 냄비 같은 여론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의 위기관리도 종종 이런 냄비 환경에 맞추어 초기 하이프로파일로 맥을 끊어 버리는 대응을 하게 됩니다. 무조건 잘못했다. 최대한 배상하겠다. 이런 식이죠. 왈가왈부하다가는 쓸데 없이 더 끌려 다니고 상처만 오래간다. 그러니 끊자. 이런 전략이죠.

이런 여론정서법을 비판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언론이 썩었다고 이야기해 보았자입니다. 온라인에는 쓰레기 같은 여론들이 넘쳐난다 귀를 막고 눈을 막아도 도움은 안됩니다. 비판과 하소연 이전에 무언가는 해서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유리턱이 되시지 않으려면요.

5. 마지막으로 정치권과 규제기관들의 여론 민감도가 극대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들을 귀찮게 하는 겁니다. 괜히 없던 일을 만들어 내는 걸 제일 싫어 합니다. 현재 자신들이 할일들로도 바쁘죠. 기업의 위기상황은 그 자체로 정치권과 규제기관에게는 골치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냥 단순 사건 사고라면 그리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게 사회적인 논란과 연결된 것이라면 다른 문제입니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언론에서 다루지 않고, 간단하게 다루고 하는 기업 위기는 그래도 조금 무시하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끓는 기름 냄비에 계속 찬물을 붓고 있는 기업입니다. 저러면 안되는데…하는데도 사회적으로 참극까지 가고 공분(public angry)을 만들어 내는 대형 기업 위기에는 어쩔수 없이 정치권과 규제기관이 개입을 하게 됩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프레임을 잡아 이를 더욱 재앙으로 끌고 가죠. 규제기관도 일단 사회적 논란이 된 건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다’는 평을 받기 싫어하는 게 당연합니다. 경영진에게 출두명령을 내리고, 압수수색을 하고, 조사를 하면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커뮤니케이션 하게 마련입니다.

정치권과 규제기관이 동시에 들이닥치면 그 다음에는 어느 한 곳도 예외없이 자신들만의 업적을 남기려합니다. 그 와중에서 기업의 위기관리 리더십은 그쪽으로 넘어가게 되버리는 거죠. 요즘엔 그 두 그룹들이 상당히 민감해 졌습니다. 언제든 개입 할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리턱들은 조심해야죠.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실제 환경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준비가 평소에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클래식 자동차들의 최고 속력은 시속 75km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큰 대로를 건너는 사람은 그렇게 쎈 훈련이나 노력이 필요 없었습니다. 대로라고 해도 돌아 다니는 클래식 자동차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었고요. 다가오는 자동차를 그냥 살짝 살짤 피해 걸어 건너면 충분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비유가 왕복 10차선 고속도로를 건너야하는 기업의 상황으로 비유 될 수 있습니다.

왕복 10차선에는 쉴새 없이 시속 200-300km의 슈퍼카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 상황이죠.  1개 차선을 운 좋게 극복했다고 해도 다음 차선에선 어떤 사고가 날지 모릅니다. 그 많은 슈퍼카들을 요리 조리 피해 10개 차선을 무사히 건너려면 그 만큼 기업은 빨라야 합니다. 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경험도 많아야 합니다. 체력과 판단력은 당연하겠지요. 위기관리 리더십이라는 이런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평소에 챙기고, 키우고, 유지하는 노력이 바로 위기관리 리더십입니다.

챔피언이 되느냐? 유리턱이 되느냐? 모든게 이 위기관리 리더십의 이야기입니다.

글 : 정용민
원문 : http://goo.gl/tfSW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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