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에 ‘우간다 아이의 희망’을 품다

우리는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나오는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당연함 허락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깨끗한 식수를 얻기 위해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물을 길으러 다니는데 사용한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이와 여성이다.

제리캔에 물을 담는 소녀와 제리백을 멘 소년

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은 보통 10리터 짜리 제리캔(아프리카에서 물통으로 사용되는 휘발유통)을 매일 나른다고 한다. 12살이 넘는 아이와 여성은 한 번에 20리터를 나른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제리캔을 머리에 이거나 손으로 들고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걷는다. 교통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소셜벤처 제리백(Jerrybag)은 아이들이 좀더 안전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제리캔을 나를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나온 서비스다. 제리백 박중열 대표는 우간다 여성공동체와 함께 제리캔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을 만든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찾은 우간다=박 대표가 아프리카 우간다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유니세프가 진행하는 우간다 아이를 위한 위생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당시 핀란드 알토대학교 지속가능 디자인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던 박 대표는 디자인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왕이면 핀란드나 우리나라처럼 디자인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제3세계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박 대표의 이런 고민을 듣게 된 우간다 출신 외부 논문지도자가 우간다에서 진행되는 유니세프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이를 계기로 2011년 11월 우간다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나 많은 NGO 단체가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현실성이 없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 프로젝트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간다 지역주민을 위한 프로젝트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아동 위생을 개선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제품 가격도 적당하지 않았고 제품을 사줄 사람도 없었어요. 해당 프로젝트에 자금과 에너지는 많이 쏟았지만 일회성 프로젝트 같았죠.”

시장 자체가 형성될 수 없는 경제구조와 원조에 익숙해져 버린 우간다 주민도 문제였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핀란드로 돌아온 박 대표는 아프리카 지역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려면 프로젝트가 아닌 사업의 형태여야 했다. 그러다 제리캔이라는 물통을 나르던 아이들의 불편함을 떠올리게 됐고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2013년 다시 우간다행 길에 오른다.

◇ 디자인으로 바꾼 아이의 삶=재래시장에 4평짜리 스튜디오를 차린 박 대표는 아이들이 불편함 없이 물을 기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리캔을 담아 등에 멜 수 있는 가방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또 NGO와 협력해 우간다 여성에게 직업 교육을 시킨 후 제리백 일부를 함께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만든 제리백은 일일이 우물가를 찾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처음으로 제리백을 선보일 때 많이 떨렸어요. 정말 아이들이 이 가방을 쓸까라는 의문이 컸거든요. 혹시 자기네 문화를 비웃는 것이라고 생각할까 봐 우려도 컸고요”

박 대표의 걱정과는 달리 반응은 매우 좋았다. 한 우물가에서는 잊지 못할 감동적인 경험도 한다. 제리백을 등에 멘 한 소녀가 다가와 슬며시 그의 손을 잡았는데 온몸에 전류가 흘렀다. 소녀는 가방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가방 안을 채운 꽃. 두 손이 자유로워지니 물통을 넣고 남은 자리에 꽃을 담은 것이었다.

“몇 개월 동안 헛수고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세이브더월드란 말처럼 세상을 구하는 일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삶에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있구나 생각하게 됐죠. 책가방을 가져본 적이 없던 아이가 제리백을 책가방처럼 사용하며 좋아한다고도 해요. 뿌듯하죠.”

제리백을 지탱하는 힘 ‘소셜미션’=올해 4년차가 된 제리백은 디자인요소를 강화해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제품도 만든다. 물론 주력은 제리백으로 우간다 여성공동체와 함께 현지에서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회사를 알리기 위해 헨드메이드페어, 한국디자인페스티벌, 서울패션위크 SFDN(지속가능패션디자인네트워크) 같은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 편집샵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리백

올해 제리백은 브랜드 정체성을 높이는 동시에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다양한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첫 번째 사업은 우간다에서 국제구호단체와 함께 진행하는 생리대 제작 사업이다. 또 5월에 제리백 신상품이 출시될 예정이며 8월에는 뉴욕에서 단독전시를 계획하고 있어 바쁜 해가 될 전망이다.

박 대표는 “소셜벤처라고 일반기업이랑 다를 것 없이 치열하게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기술로 승부할 수 없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투자받는 것이 어려운 것이 소셜벤처인데 그나마 우리나라는 사회적기업육성사업을 통해 초기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나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솔직히 소셜벤처를 운영하는 일이 쉽진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이웃 또는 가족 등을 위해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그를 움직이게 한다. 소셜미션이 뚜렷하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훨씬 더 강인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은 정말 어렵고 힘듭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모릅니다. 저 역시 사명감과 즐거움 때문에 제리백을 운영하고 있어요. 소셜벤처를 준비하는 예비창업자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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