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도 소셜벤처가 될 수 있는 이유 ‘임팩트게임’

“내러티브는 사회적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몇해 전 개봉한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것처럼 국내서는 특히 영화가 그렇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보면 영화뿐 아니라 게임까지도 사회적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콘텐츠로 주목받는 것을 알 수 있다.” 12일 CKL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게임문화포럼 오픈세미나에 참석한 김효택 자라나는씨앗 대표가 말했다. “상품의 가치만으로 승부를 보던 과거와 달리 유저가 공감할 만한 새로운 가치도 전달해야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팬덤도 형성된다. 이제 국내 게임도 재미뿐 아니라 이용자와 공유할 만한 가치 즉 사회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

게임을 오락과 중독의 대상으로만 봤다면 그 시선을 조금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지난해 국내 게임개발사 ‘겜브릿지’는 네팔 대지진 피해자가 생존을 위해 싸우는 내용을 담은 게임 ‘애프터데이즈’를 개발, 이용자로 하여금 게임의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재난으로 인한 곤경과 슬픔에 대해 공감하는 동시에 소외된 지역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는 소셜벤처 액셀러레이터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2014년 출시된 폴란드의 ‘디스 워 오브 마인’이나 인도의 ‘미싱’ 역시 스토리를 통해 각각 전쟁의 참상과 인신매매에 관해 고발, 영상 매체로는 어려운 간접 경험을 제공한 대표적 사례. 그밖에 현재 게임개발사는 아니지만 숲 조성을 위한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운영하는 국내 소셜벤처 트리플래닛도 동명의 나무 심기 게임을 출시하는 데서 시작, 사용자가 게임에서 가상의 나무를 심으면 실제로 나무를 심어주는 형태로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처럼 최근에는 기존 대중문화에서 주목받지 못한 사회, 환경 이슈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고 인식을 개선하는 게임을 가리켜 ‘임팩트게임’이라 부른다.

디스워오브마인 게임 화면 – 출처: 디스워오브마인 공식 홈페이지

앞서 언급한 김효택 대표의 자라나는씨앗 역시 임팩트게임 개발에 나선 곳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 1904~1920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의 역사를 담은 게임 ‘맺음(MazM): 페치카’ 내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페치카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비서이던 주인공이 여러 사건을 거쳐 자신만의 길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뼈대로 삼았다. 아직 개발 초기기 때문에 컨셉과 계획만 나온 상태지만 다양한 역사적 실존 인물도 조연으로 등장시킬 예정”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

자라나는씨앗은 이전까지는 젊은층의 낮은 독서율과 영화화, 뮤지컬화를 통한 문학 작품의 표면적인 이해에 주목, 시간의 제한 없이 원작의 디테일한 내용과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이를 각색한 내러티브형 게임을 주로 제작해왔다. 이를 통해 상업적인 성공과 재미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문학 경험 심화라는 가치를 동시에 꾀했다는 것. 실제로 자라나는씨앗이 2017년 출시한 지킬 앤 하이드의 경우 누적 200만 다운로드를 기록, 구글 인디게임페스티벌 탑3에 오른 동시에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와줘서 좋았다는 이용자 평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김효택 대표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에 대해 알게 된 뒤로는 잊혀진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는 게임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최재형 선생에 대해 공부해보니 그가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를 직접 지원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오를 뻔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하지만 “국내서는 이념적인 이유로 북쪽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는 역사 교육에서 제외되기 마련이라 그를 아는 이가 얼마 없다는 점 역시 알게 됐다”는 것. 이어 그는 “게임 스토리도 대중의 경험을 넓히고 성장할 기회로 작용할 힘을 갖는다. 페치카를 통해 국내서는 역사적 인식을 높이고 글로벌 출시 이후에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둘러싼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전하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렇게 사회적 가치를 내포한 게임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내 게임문화가 더 성숙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 대표와 함께 오픈세미나에 참석한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는 “국내는 게임을 즐기거나 만드는 입장 모두 게임을 통해 유의미한 메시지를 주고 받기보다는 게임을 어떻게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깰까에 집중하는 것 같다”며 “공략, 최단 루트라는 키워드가 게임 커뮤니티서 자주 출현하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자리에 있던 이정엽 순천향대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역시 “해외서는 게임이 출시되면 게임 평론가가 단순히 재미도와 공략법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해당 게임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공론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도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게임을 이해하려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게임을 공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를 아카이빙할 필요도 있다. 미국 로체스터에 위치한 스트롱 박물관처럼 게임을 축적, 이를 중심으로 문화적, 학술적으로 게임에 접근할 기회가 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