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모인 서울밖 변화의 주역 “지방에서 왔습니다”

19일 서울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4일간의 네트워킹 행사 ‘지방에서 왔습니다.’ 현장에는 지방 청년 창업가와 기업이 모인 가운데 오프닝 콘서트에 이어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토크콘서트는 ‘그냥 간 놈’, ‘딴 데 간 놈’, ‘돌아온 놈’이라 자칭하는 4개 로컬 스타트업 대표를 모아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겪었던 경험과 요즘의 근황을 청했다.

가장 먼저 만난 홍동우 공장공장 대표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빈집을 활용해 ‘괜찮아 마을’을 조성, 쉼이 필요한 청년에 쉴 곳과 쉴 시간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는 본래 서울서 공유 스쿠터 사업을 운영하다 전국일주 여행사 ‘익스퍼루트’를 창업, 청년을 타겟으로 한 전국일주 게임 콘텐츠를 선보였다. 그러나 당시 만나는 청년마다 ‘취업으로 힘들다’, ‘취업을 해도 힘들다’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들에게 ‘괜찮다’ 말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단 소개다. 

“지자체는 지역 활성화, 인구 유지를 위해 청년을 부르지만 우리는 청년에 ‘쉼’을 제공하는 게 우선이다. 쉼을 제공받은 청년이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고 홍 대표는 털어놨다. “6주 프로그램을 두 차례 운영하며 참가자에 아무런 활동도 강제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알아서 마을을 탐험하고 사람을 만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더라”며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팀을 만들고 서로 북돋아주고 있었다. 다양한 제품이 탄생했고 상영회와 크라우드 펀딩, 토크콘서트가 자발적으로 열렸다”는 것. 심지어 과정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고 남겠단 이들, 사업자등록에 나선 이들도 있었으며 여전히 29명이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단 설명이다. 홍 대표는 “이들은 빈 집(Empty)을 활용하고 공유(Share)하며 커뮤니티(Community)를 만듦으로써 서울로부터 ESC키를 누르고 새 기회를 찾았다”며 “언젠가 전세계 청년이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해 찾는 도시로 발리, 치앙마이 이어 목포가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다음으로 만난 유지황 대표는 남해에서 청년 농부를 위한 생활 인프라 ‘팜프라’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그는 농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쫓겨난 경험을 떠올리며 “당시는 청년 농부란 개념이 자리잡지 않은 탓에 재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새 시도를 해보겠다하면 다들 ’네가 뭘 아냐’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청년 농부가 어떻게 터를 마련하고 생계를 유지할까 궁금했다. 여러 국가를 돌아 보니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지원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불법으로 사회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농사를 짓는 곳도 있었다”면서 그는 “시스템이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 설문 결과 적은 자본금으로 시작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수익모델, 기술을 배울 곳, 실험과 검증할 무대가 없다는 점, 홀로 떠나기엔 두려움과 외로움이 크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코부기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팜프라는 ‘촌라이프’를 시작하려는 청년을 위한 조립식 이동형 주택을 설계하고 이를 매뉴얼화, 모듈화하고 워크숍을 열어 보급을 늘리고자 했다. 앞으로는 다양한 제품과 프로그램, 브랜드를 마련, 수익 모델을 실험한 다음 ‘팜프라촌’을 조성, 궁극적으로는 다음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촌라이프스타일을 만든단 구상이다. “올해 마련한 팜프라촌은 테스트버전이고 이것이 잘 되면 내년에도 남해의 다른 지역에서도 또 기획할 생각이다. 환경, 삶의 다양성에 집중해 다음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촌라이프를 조성하겠다.”

이어서 무대에는 빈집프로젝트 ‘다자요’의 남성준 대표도 등장했다. 남 대표는 “제주도가 힐링, 자연 콘셉으로 관광객을 유치하지만 오히려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자연 가리고 들어선 대규모 리조트와 놀이공원이 자연 경관을 방해하고 있다”며 “제주도에 남은 빈집만 2만 5,000채다. 이를 활용하면 800개 넘는 호텔을 대체하고 250만 제곱미터에 가까운 자연 환경을 보호할 수 있을 거라 봤다”고 사업을 시작한 배경을 밝혔다.

이에 다자요는 빈집을 수리해 게스트하우스로 선보이는 것으로 시작, 점차 코워킹과 코리빙 공간으로도 확장했으며 다양한 스타트업과 투자사를 위한 입주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다만 소유주는 있어도 거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규제를 당하자 얼마 전 기존 사업은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자리를 통해 남 대표는 “이제 다자요를 응원해주는 이들과 함께 일반인 대상 숙박서비스가 아닌 임직원, 주주가 사용하는 사택 개념으로 공간 운영 방안을 변경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농담처럼 하는 얘기기는 해도 ‘전국민 다자요 주주화’를 꿈꾸고 있다. 9월 말 열리는 와디즈 펀딩을 통해 주주를 모으고 지금의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할 생각이다. 관련 부처, 국회의원과 직접 만나 국회 입법과 규제 프리존 설정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남 대표는 밝혔다.

마지막으로 만난 김신애 무브노드 대표는 태백에서 코워킹 스페이스 ‘무브노드’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전했다. 김 대표는 태백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에 올라와 디자인 서적 저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널티’라는 소셜벤처를 창업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학교 밖 청소년과 게임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돕고 싶었다는 것. 그러나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단 기억이다. “네트워크도 부족했고 혼자 감당하기에 아직 스스로의 그릇이 작다고 느꼈다.” 이후 김 대표는 ‘제주에서 한달 살기’를 하며 디지털 노마드가 살만한 공간을 찾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굳이 서울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단 결론에 이렀다는 것. “태백에 돌아오니 내가 알던 이웃, 친구, 가족과 함께 다시 재밌게 살아보겠단 용기가 생겼다. 디지털 노마드를 지지하고 청년 세대의 공백을 제거하자는 생각으로 무브노드를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해 문을 연 무브노드는 어느덧 놀이 문화 공간, 루프탑 공연장, 독립 서점과 편집숍, 셰어하우스와 게스트 하우스, 코너 갤러리를 갖춘 번듯한 코워킹 공간으로 자랐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부부가 무브노드를 통해 ‘팹랩’이라는 실험제작실 공간을 오픈하기도 했다. 이처럼 태백도 점차 떡잎이 자라고 더 재미있는 활동이 활발히 탄생하리라 기대한다”고 김신애 대표는 전했다. 또 김 대표는 “태백에 내려와 얻은 것은 사람과 자연을 좋아하게 됐고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는 점이다. 인구 밀도가 낮은 곳이다보니 찾아오는 사람이 반갑더라”며 선택과 실천적 삶, 감정적 상처 치료 역시 장점으로 꼽으며 마무리했다.

한편 토크콘서트에 앞서서는 이번 행사를 마련한 배경에 대한 소개도 전해졌다. 토크콘서트 진행을 맡은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장재열 대표는 “지방이라는 단어가 수도권 중심적 단어이기에 행사명에 그대로 명명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은 주최측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차라리 지방이라는 단어를 사회적 합의에 의해 긍정적인 표현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자는 판단에 이렀다”며 “로컬 스타트업에 대해 이제는 관심도, 시도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지속가능한 지원 방안이 부족하다. 이번 행사가 지속성을 높일 모멘텀으로 작용하길 기대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를 후원한 이종수 IFK임팩트금융 대표는 “정부가 일자리, 주거, 복지를 중점으로 청년희망사다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부분 수도권, 대도시에 거주하는 청년을 위한 것 같더라”며 “멀지 않은 미래에 국내 지자체 3분의 1이 2030년 무렵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이 같은 지방 소멸 문제를 해소하려면 지방에서 청년이 일할 근거와 인프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FK임팩트금융은 지역을 활성화하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청년을 응원하고자 한다. 이번과 같은 행사를 지속 개최해  지방에서 일하기 좋은  터전이 마련되도록  돕겠다”는 의지를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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