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앤리 법률사무소 문재식 변호사의 기고문입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양질의 콘텐츠를 기고문 형태로 공유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벤처스퀘어 에디터 팀 editor@venturesquare.net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투자계약이라면 빠지지 않는 조항이 있습니다. 바로 ‘기업공개 의무’ 조항입니다. 보통 “회사는 자신의 주권을 공개시장에 상장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는 “회사는 회사의 보통주식을 한국거래서 유가증권 시장(또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기업공개)하기 위하여 관련 법령 및 거래소의 상장규정 등에서 정한 바에 따라 0000년 00월 00일까지 기업공개를 완료하고 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하여야 한다”고 하여 기업공개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에 부수하여 투자자의 통지로 기업공개를 요청하는 경우 즉시 기업공개를 추진하거나 그에 관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문구도 함께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엑싯(exit), 즉 투자금 회수를 위한 핵심적인 조항일 수 있지만, 피투자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상장이란 것이 아무리 회사가 성장하더라도 외부 투자 환경 등이 나빠지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업공개를 정해진 시한까지 하지 못하면 계약 위반으로 각종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을까 더욱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투자계약상 기업공개 의무는 어떻게 해석 및 적용되고 있는지 아래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노력하여야 한다’의 의미와 법적 구속력
투자계약상 기업공개 의무 조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는 “상장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입니다. 일반인이 본다면 상장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인지, 여력이 있으면 하는데 꼭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인지 실제 그 구체적인 의미가 잘 와닿지 않습니다. 우리 법원은 통상적으로 계약서에 쓰이는 ‘노력하겠다’는 문구를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의 기재가 있는 문면에 “최대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가 위와 같은 문구를 기재한 객관적인 의미는 문면 그 자체로 볼 때 그러한 의무를 법적으로는 부담할 수 없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 이행을 사실상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4. 3. 25. 선고 93다32668 판결 참조). 즉, ‘노력하겠다’의 대상인 사항에 대해 법적 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인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무를 법률상 부담하겠다는 의사였다면 굳이 “최대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므로, 위와 같은 문구를 삽입하였다면 그 문구를 의미 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당사자가 그러한 표시행위에 의하여 나타내려고 한 객관적인 의사는 그 문구를 포함한 전체의 문언으로부터 해석함이 상당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해당 사항에 ‘하여야 한다.’ ‘할 의무가 있다’는 의무를 부과하는 문구가 아닌 굳이 ‘노력하겠다’라고 붙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의무로 부과하기 보다는 그보다 약한 구속력만을 부과하겠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고 본 것입니다(물론 다른 조항이나 사정을 통해 법적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의사가 명확하다면, 그러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만일 투자계약상 기업공개 의무 조항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면, 일단은 안심하여도 되겠습니다.
2. ‘상장’이라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무조건 페널티를 부담해야 할까
그렇다면 ‘노력하겠다’라는 문구가 상장의무 조항에 없고 ‘상장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면, 무조건 상장이라는 결과를 내야 하고, 결국 상장하지 못한다면 투자계약상 계약위반에 해당하여 위약벌, 투자자의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 등의 페널티를 부담해야 할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법원에서는 피투자사의 기업공개 의무를 ‘결과채무’가 아닌 ‘수단채무’로 보기 때문입니다. ‘결과채무’는 어떠한 결과물을 완성하여야 목적을 달성하는 의무인 반면, ‘수단채무’는 어떠한 결과물을 완성하진 못하더라도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할 의무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물 공사계약, 제작공급계약 등은 그 수급인이 결과채무를 부담하는데, 변호사의 소송대리사무, 의사의 진료채무 등은 대표적인 ‘수단채무’에 해당합니다.
우리 법원은 기업공개 즉 상장이라는 결과가 오로지 회사의 성과와 노력에 의해 달성될 수는 없는 점, 그러한 기업공개 의무 위반을 투자계약 위반으로 보면 피투자자 또는 이해관계인 입장에서 상당한 페널티를 부담하게 되는바, 벤처 투자의 본질 및 스타트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적 측면에도 반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벤처투자계약상 기업공개 의무에 대해 기업공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결과 채무가 아니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기업 공개를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할 채무(=수단채무)로 보고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11. 선고 2022가합536943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1. 17. 선고 2023가합95494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4. 5. 9. 선고 2023나2038760 판결 참조).
이에 따라 회사가 ‘상장’이라는 결과는 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기업공개를 위한 주간사를 선정하고 상장심사 준비를 하거나, 상장요건 충족을 위한 재무적, 회계적 활동을 하였다면, 투자계약 위반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즉, 회사나 이해관계인이 ‘의도적’으로 기업공개를 해태하거나 그와 관련하여 주요한 계약위반이 있다고 보는 경우에만,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아 페널티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장’이라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회사가 어느정도 성장하였다면, 적어도 상장을 위한 준비는 해두는 것이 안전하겠습니다.
최근 투자업계가 얼어 붙은 만큼 VC 업계에서도 이전보다 투자금 회수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피투자사에게 기업공개를 재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그로 인한 분쟁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기업공개 자체를 성공하지 못하였더라도 투자계약 의무 위반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투자계약의 구체적 문구나 회사의 사정 등에 따라 모든 경우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업공개 의무 위반이 우려되는 경우라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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