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의 위기관리]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곧 위기관리 컨설턴트

◆ Devil’s Advocate
(열띤 논의가 이뤄지도록) 일부러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선의의 비판자 노릇을 하는 사람] [네이버]

기업 내부 인력들과 함께 실제 앞으로 예상되는 이슈에 대해 전략적 대응 논리와 메시지를 만드는 워크샵을 할 때 이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하다.

대응 논리와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예상 가능한 최악의 질문들’을 도출하는 과정에서도 일종의 ‘악마의 대변인’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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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grahamblog/5592595600/sizes/z/in/photostream/
“사실 이 사업은 우리가 문제 있다고 원래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 NGO쪽에서 이 사실에 대해 ‘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일을 진행했느냐?’하고 물으면 솔직히 우린 할말이 없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팀장을 위기 관리 워크샵을 할 때는 ‘비판’하면 안 된다. “당신은 실무자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이런 식의 비판이나 폄하는 위기 시 조직을 위해 이득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런 실질적 문제점이나 상황적 불리함을 가능한 많이 쏟아 내 놓는 내부 사람들이 있어야 충분한 대비가 가능하다.

외부의 컨설턴트들도 마찬가지다. “네,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로 점철되는 컨설턴트는 코디네이터형이나 조정형 코칭 방식으로 이해되지만, 중요한 이슈들에 있어서는 정확하고 악랄한(?) ‘악마의 대변인’으로 변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가 정부관계자라면 귀사가 그런 논리를 가지고 접근하실 때 상당한 반감을 가질 것입니다. 과징금이나 생산판매금지까지의 악영향을 초래하면서도 그런 논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같은 까다로운 질문을 해야 한다.

이런 악마의 질문이 있어야 해당 기업에서는 “우리의 논리가 정부에게는 무리가 있구나. 그러면 정부에게는 이 논리를 어떻게 변환시켜 전달해야 하나? 다른 이해관계자들과의 논리적 통합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나?”하는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악마의 질문 없이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그냥 그런 논리로 밀어 부치지 뭐” 이런 식의 자화자찬만 존재하면 실제 위기 발생시 현실적 장애물을 만나게 되곤 한다.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에 있어서도 이 악마의 대변인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업의 위기관리 팀에게 실제적인 위기 시나리오를 전달하고 이에 대한 빠른 대응안을 마련해 달라 주문한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워룸에 모인 CEO와 임원들은 진지한 토론을 하면서도 실제와는 다른 시뮬레이션 의사결정을 내리곤 한다. 이게 문제다.

예를 들어 ‘OOO제품의 심각한 이물질과 이전 유사 이물질 사례에 대한 재논란 쟁점화’ 시나리오라면, 워룸내의 CEO와 임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이 정도 상황이면 이 제품을 접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데…어쩔 수 없겠네. 이렇게 치명적이면 뭔가 전사적인 결단이 있어야 하겠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의사결정을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그렇게 간단하게 의사결정을 몰고 갈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 때 필요한 사람이 악마의 대변인이다. 워룸에 모인 CEO와 임원들에게 악마의 대변인은 이렇게 주문한다.

“안됩니다. 절대 안돼요. 올해 저희 매출목표가 얼마입니까? 만약 이 제품라인을 접거나 일정기간 판매 중지하면 우리가 올해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까요? 안되지요? 머리를 짜내 보세요. 해당 제품라인을 살리면서, 매출에도 빠른 회복이 있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는 어려운 요청을 하는 거다.

당연히 CEO와 임원들은 머리를 짜낸다. 이 때부터 현실적인 토론이 시작된다. “어떻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대응들을 해야 하며 그 전략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의사결정을 모으게 된다.

일부에서는 “그러면 확실히 우리의 Not Guilty”를 주장하는 의미에서 CEO께서 기자회견을 하시고 우리의 결백을 밝혀 주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라는 의견을 내 놓으면 CEO께서 끄덕이시기 전에 이 악마의 대변인이 끼어 든다. “안됩니다. 안돼요. CEO께서는 기자회견을 하실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CEO께서는 부정적인 이슈로 기자회견을 하시거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왜 지금 같은 상황에서 CEO께서 그런 행동을 하셔야 하지요?”하는 공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임원들의 인상은 또 한번 찌그러진다. “이것 저것 다 안돼 안돼하면 어쩌자는 거야? 우리보고 시뮬레이션 접으라는 소리인가?”하고 반발하는 임원들도 생겨난다. 하지만, 현실 상황에서 도출될 수 있는 당연한 요청과 질문을 미리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험하고, 토론해 보는 그 자체가 위기관리 역량이니 어쩔 수 없다. 입에 쓴 약이 몸에 달다.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은 항상 최악을 예상하고, 항상 부정적인 상황을 제시해야 한다. 반론에 익숙해야 하고, 클라이언트들이 보지 않고 지나가는 문제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눈앞에 보여주어야 한다. 악마처럼 집요하게 질문하고 무리한 요청을 하며 미친 듯 압박해야 한다. 이 악마의 대변인과의 씨름을 통해 기업 임원들을 실제적인 위기관리 경험과 역량을 쌓게 된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고, 좌절되는 상황에서도 악마의 대변인을 기억하면서 스스로 좀 더 나은 논리와 대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글 : 정용민
출처 : http://jameschung.kr/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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