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의 책을 읽고서야 풀린 나의 수십년된 의문 – 총,균,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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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추석연휴 동안에 총, 균, 쇠를 읽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최장기간 대출 1위였다고 해서 유명세를 얻은 책인데, 사실 나는 학교 다닐 때에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어떤 대형 교양수업에서 읽히는 책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내가 ‘총/균/쇠’를 읽게 된 이유와 네권의 책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에는 약간의 배경이 있다. 사실 지난번에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서양과 나머지 세계‘ 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은 후에, 니얼 퍼거슨이 사실은 ‘금융의 지배(The ascent of money)’라는 책으로 더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또 그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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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지배는 사실 엄청나게 흥미로운 책은 아니었다. 다만, 채권, 보험, 주식(equity) 등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금융의 요소들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 책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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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읽은 책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1/2권’ 이었다. 예전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처음 나왔을 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서 나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국내편은 1-7권 중에서 초반 몇권인가만 읽다가 중간에 그만 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읽고 싶다는 호기심이 동했다. 일단 일본에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답사한다는 컨셉 자체가 신선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대체 일본에 ‘우리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1,2권은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아마도 이 책을 들고 일본의 간사이나 큐슈 여행을 다시 가게 된다면 무척 흥미롭게 많은 지역을 돌아볼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동안 잘 몰랐던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조선의 도공들이 임진왜란 때 끌려간 일들에 대한 자세한 전말, 일본의 고대사 (조몬/야요이)등에 대해서는 역사책에서 짧게 한 두줄 읽었을 뿐인데, 이렇게 살아 숨쉬는 유산들이 있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제/고구려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활약상에 대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당시에 한반도를 버리고 건너간 사람들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사람들과 약간의 공통점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이전까지는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나 백제/고구려 패망이후 난민들은 굉장히 불쌍하게 살거나 불행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본은 그들이 선진화된 글과 도구와 기술을 가지고 대접 받으면서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의 민족과 문화에 녹아들어갔을 뿐, 그것을 일본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간 도래인들의 역사를 우리것인냥 주장해도 좀 억지스럽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와서 영국인들이 미국의 독립전쟁사를 영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역시 역사는 너무 한쪽의 편에서만 바라봐서는 안되고, 현대인의 시각에서 봐서는 안된다.

아무튼, 이러한 4권(그 중 두권의 1/2권으로 나눠진 시리즈)의 역사와 문화 유적 관련된 책을 읽던 중에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위에 언급한 네 권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책이 바로 ‘총, 균, 쇠’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들에는 공통적으로 인류 역사의 초기에 다른 지역보다 유의미한 정도의 발전을 이룬 문명으로서 ‘일본’을 꼽고 있었다. 심지어 니얼 퍼거슨의 책에선 중국문명은 언급이 안되어도 일본 문명은 언급된 경우도 있었다!

나의 몇십년 묵은 의문

나도 한국에서 쭉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서 초/중/고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대해서 철저한 교육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풀리지 않은 질문 하나는 ‘우리민족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왜 우리가 일본을 쳐들어 간 것이 아니라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였는가?’ 라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2002-2003년에 일본 와세다에서 유학을 했고, 2011년에는 북경대에서 유학을 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수도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고, 그들의 생활, 사고방식, 역사, 언어에 대해서 다소나마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 살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그토록 싫어하거나 무시하던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나라이자, 훨씬 인구도 많은 나라고, 굉장히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점이었다. (약간은 속은 느낌)

그런데 과거의 교육에 의해서도 그렇고, 세계사의 흐름상으로 보아도 분명 중국에서 시작된 문명이 우리나라를 거쳐서 일본으로 흘러간 것은 맞을 터인데, 왜 근대를 넘어오면서 일본이 더 강한 힘을 갖게 되었는가? 그리고 지금 세 나라를 둘러보면 분명 일본의 ‘문명화’ 내지는 ‘생활수준’ 이라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하기 때문에 나의 머릿속에는 항상 의문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영국과 같이 ‘문화의 종착지’ 라는 측면에서 여러곳의 문화가 차곡차곡 쌓여서 성과를 거둔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하필 길목에 있어서 여러가지로 치고받고 하느라고 시달려서 그렇다고 해도 여러가지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분명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 정도까지는 일본은 굉장히 뒤쳐져 있던 상황이다. 이 무렵을 대략 6-7세기부터 길게는 10세기 무렵까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16세기 무렵에 일어났던 임진왜란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급기야 19세기 후반을 거쳐 20세기에는 일본의 치하에서 수모를 당하고 만다. 도대체 10-15세기, 그리고 16세기-19세기와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동북아의 역사가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었던 것일까?

삶을 살면서 미치도록 궁금한 것은 아니고, 당장 답을 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질문은 그냥 묵직하게 나의 머릿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그런 질문이었다. 삶을 살다가 한 2-3년에 한번씩, ‘글쎄…. 그러니까 그건 왜 그런지 좀 이상하단 말이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총/균/쇠에서 얻은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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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는 내가 앞서 이야기한 질문과 다른 몇권의 책에서는 얻지 못했던 답을 명쾌한 방식으로 제시해 주었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2003년 증보되면서 실린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챕터가 있고, 이 부분에서 많은 답을 얻었다.

이 책의 요지는 인류의 역사에서 발생한 중대한 전환이었던 농경 및 정착생활이 특정 지역에 국한된 자연환경과 농작물로 인한 우연의 산물이었으며, 농경과 단백질 섭취를 위한 중요수단이었던 가축의 사육도 특정 지역에 국한된 놀라운 우연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오늘날 시달리고 있는 많은 질병/병균이 사실은 가축에게서 전해진 것이 많으며, 이는 이러한 질병과 병균에 익숙하지 않은(즉, 면역력이 없는) 이웃들에게 전해지면 그들을 쉽게 괴멸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 증명하고 있다.

철기문화의 전파 부분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사책에서 바로 문명의 증거이자, 강력한 사회체계 형성으로 나아가는 필수품 정도로 배웠을 것이다. 석기, 청동기, 철기를 거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농경문화를 가질 수 있고, 문자, 율령, 불교, 중앙집권 따위야말로 야만에서 벗어났다는 증거라고 배웠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런 배움을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적용하면 더 이해가 잘 안되었던것 같다. 즉, 5-6세기만해도 일본은 우리가 철기, 불교, 한자 등을 전해주었던 ‘미개한’ 곳이었을텐데, 어떻게 불과 그 후 몇백년만에 우리나라를 초토화시킬 정도의 무력을 가질 수 있었냐는 거다.

즉, 총/균/쇠를 읽고 난 다음의 나의 나름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일부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에서 복합적으로 얻은 결론)

고대 한/일관계는 지금의 국가관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좀 더 유연한 틀에서 봐야 한다. 당시의 왜(일본)과 백제/고구려는 보다 돈독한 관계였으며, 딱히 지금의 국가관이라는 틀로 자르거나 뭉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책의 말미에서 모 교수님이 총균쇠가 지금의 일본인의 조상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면서 흥분하시는 것은 완전히 이 책의 메세지를 잘못 이해하신 것이다)

고대시대의 사회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농업생산성과 정주생활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연적인 환경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기후가 온난하고 수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동물성 지방이 더 풍부한 자연환경이다. 따라서 고대에도 약간의 외부자극(기술 및 제도)가 전해졌을 때, 충분히 자생적으로 빨리 발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을 것이다.

철기, 불교, 문자 등과 같은 사회제도 및 기술(technology)는 조금 늦게 받아들이거나 조금 일찍 받아들이는 것의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받아들인 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가의 정도/태도이다. 우리는 고대시대에는 그런것들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였고, 또 창의적인 수용을 했으나, 고려후기 및 조선을 거치면서 너무 오랜 기간 통일이 이루어져서 태도가 추종과 무비판적 수용으로 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다.

니얼 퍼거슨이 그의 책에서 ‘경쟁’을 서양 문명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거론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특히 아시아에서 많이 부족했고, 우리나라 역시 명/청이라는 단일집권체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이러한 영향을 간접적으로나마 받은 것이 아닐까? 반면 일본의 전국시대는 계속적인 사회의 긴장을 유지했으리라.

한국과 일본의 언어적 차이가 지리 및 역사에 비추어볼 때 너무 큰 이유는 (문법은 거의 일치하지만, 약 15% 정도의 어휘만을 공유하는 이유) 과거에 지속적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유입이 일어났고, 결정적으로 3국을 통일한 신라가 아닌 백제/고구려 유민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즉, 신라와 백제/고구려의 언어는 많이 달랐다) 그렇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지리적 거리 및 역사적 교류를 볼 때 우리는 보다 더 비슷한 말을 쓰고 있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역사가 참으로 더 흥미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뿐일까?

지금 우리가 ‘한국’이라고 부르는 국가 혹은 지역과 ‘일본’이라고 부르는 국가 혹은 지역의 힘의 균형에서 차이가 벌어진 것은 결정적으로 지리적/ 환경적 요인이 컸던 것이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전해 주었는지, 먼저 무엇을 만들었는지 등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 이 두 국가 혹은 민족 사이에는 ‘유전학적/ 인종적 차이’ 따위는 (약간 존재 할수도 있겠으나) 미미하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쌍둥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goo.gl/JYvz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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