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없애는 대신 존중하는 기술을 찾아야”

“지금까지의 과학 기술에 대한 담론이 사실은 장애와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자기만의 방식을 존중받으려는 장애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저 장애를 개선하고 치료하는 데만 집중했다. 각 개인을 존중하거나 강화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는 소홀했다. 장애는 문제가 아니라 존재다.”

5일 서울 드림플러스 강남에서 제3회 D-테크 공모전이 열렸다. 공모전 참여기업 발표에 앞서 강연을 통해 법무법인 덕수 김원영 변호사는 크립테크(Crip-Tech)란 개념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크립테크는 장애를 무리하게 고치고 개선하기보다 고유한 감각 그대로 풍성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장애에 부여하던 사회적 차별이나 불편함을 개선하는 데 집중한다는 뜻”이라며 김 변호사는 “장애를 소거하는 엄청난 기술, 유전자 치료를 고민하는 대신 접근 방향을 바꿔 장애를 가진 이들의 소통과 생활을 돕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과학기술계는 장애에 대한 전형적 인식을 버리지 못했다. “생명윤리학계가 특정 기술을 비판할 때면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흔히 방어하곤 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마치 다윈의 진화설과 같은 그림을 그린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그 가족이 비극적으로 살다가 치료, 재활에 성공해 두 발로 걷고 비장애인 이성을 만나는 이상적이고 전형적인 이야기”라며 “기술이 장애인에게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시각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애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이같은 그림으로만 상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김 변호사는 말했다.

“더 좋은 의족, 휠체어, 더 좋은 경사로도 중요하지만 크립테크의 핵심 아이디어는 자기만의 방식을 존중하고 강화하며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다. 휠체어를 타는 이라고 해서 무조건 더 성능 좋은 의족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가가 중요하다.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무용수가 프로스테틱 의족을 차고 다시 무대에 올라 춤을 춘 일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런 이들은 프로스테틱 의족이 더 필요할 수 있지만 나라면 또다른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기술의 방향성을 장애를 소거하는 데에만 가두지 말라는 당부도 전했다. “장애를 치료하려는 기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기술을 개발하든 장애인이 장애를 소멸하는 시대를 꿈꾸고 있다는 인식에만 갇히지 말라”며 김 변호사는 “장애인권 운동의 방향은 장애를 손상과 구별하는 것이다. 장애를 억지로 고치거나 재활하기보다 그 사람이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이 역시 아이덴티티로 받아들이게 하자는 것이다. 장애인 차별 금지법 철학적 기반도 여기 있다”고 말했다.

“비극에 빠진 장애인을 구원하는 기술이 아닌 이들의 삶을 존중하는 기술을 말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덜 거창하고 덜 힙하더라도 효과적인 수단을 찾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공모전을 주최한 법무법인 디라이트, 프리즘, MYSC는 지난 12월부터 장애인 기술, 디자인 분야 14팀을 시제품·기술 보유여부에 따라 두 가지 트랙으로 나눠 모집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각 팀이 무대에 올라 장애인 생활 편의, 고용 문제 등을 해소할 아이디어와 제품을 소개했다. 발표 이후에는 현장 심사를 통해 특별상부터 대상까지 수여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아이디어 기획 단계에 해당하는 트랙1에서는 AR 자막 생성 앱 ‘오디세이’를 제안한 김지연 씨가 특별상을 받았다. 오디세이는 청각장애인 정보접근성 개선이 목표다. 우수상은 머신러닝 기반 언어장애 진단, 치료 앱 ‘리톡’을 개발한 김민재 씨 외 3명, 중증 장애인 원격고용 머신러닝 학습데이터 전처리 플랫폼을 발표한 심주섭 씨가 받았다. 대상은 당뇨발을 위한 스마트 슬리버를 개발한 박성수 씨에게 돌아갔다.

이어서 시제품과 기술을 가진 팀이 모인 트랙2에서는 정보소외계층에게 포털사이트 뉴스를 요약하고 번안해주는 AI 서비스를 개발한 이지혜 씨 외 2명이 특별상을 받았다. 우수상은 음성과 단축키만으로 스마트폰을 제어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런처를 개발한 에스엠플래닛,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양육자를 위한 아기 울음 패턴 분석 솔루션을 개발한 디플리가 받았다. 최우수상은 빠르고 쉽게 쓰고 지울 수 있는 점자 솔루션 ‘버사 슬레이트’를 소개한 오버플로우. 장애인 일자리 매칭 솔루션 ‘바라다’를 소개한 비사이즈에 수여했다. 마지막으로 대상은 탑승자와 간병인을 모두 고려한 보급형 전동 휠체어와 보조장치를 개발한 리베라빗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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