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 그 이상의 의미, 디스플레이 기술

끊임없이 발전하는 디스플레이 기술

디스플레이가 단순히 ‘진열’만을 뜻했던 시기가 있었다. 상품을 매장에 진열한다, 전시한다 등의 의미로서 말이다. 2021년, ‘진열’의 의미로 쓰였던 디스플레이는 TV, 컴퓨터, 이동전화기, 개인휴대통신(PDA) 등에 있는 화면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가, 이제 하나의 산업의 개념으로까지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리서치앤마켓’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약 8%의 연평균 성장률로 2023년에는 약 1,866억 8천만 달러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약 1,866억 8천만 달러 규모에 달하는 만큼 디스플레이 산업도 세분화되었다. 여러 리서치 기관이 사용하는 분류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디스플레이 혁신 기술 부문, 사용자가 실제로 사용하게 되는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디바이스 부문, 그리고 그 기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 부문으로, 각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스타트업들 또한 여럿 볼 수 있다.

첫 번째, 디스플레이 혁신 부분에서는 미국 플로리다 기반의 매트릭스테크놀로지(Mattrix Technologies)사의 OLET 기술을 예로 들 수 있다. 매트릭스 테크놀로지의 OLET은 트랜지스터의 스위칭과 OLED의 발광 기능을 결합한 소자로, 트랜지스터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 패널 구조와 공정은 단순하지만 기술 난이도가 높아 개발에 한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매트릭스테크놀로지는 자체 기술력을 기반으로 발광 소재와 전극을 수평으로 배치, 선 발광만 구현이 가능했던 OLET의 한계를 넘어 수직으로 배치를 통한 면 발광을 가능케 했다.

 

매트릭스 테크놀로지의 OLET 구조. [출처]_매트릭스 테크놀로지
이와 같은 솔루션을 통해 매트릭스 테크놀로지의 OLET은 OLED 대비 높은 발광 효율을 보여 차세대 디스플레이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2019년에는 일본 JSR 코퍼레이션과 우리나라의 삼성벤처투자로부터 약 300만 달러, 그리고 2020년 8월에는 JSR 코퍼레이션의 2차 투자로 150만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해 울트라 프리미엄 OLET 제품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술과 기술 – 디스플레이 기술의 다양한 활용

디스플레이 시장에 TV와 모바일 주자들만 있던 시대는 지났다. 사회 전반적으로 디지털화가 진행되며 전문가들은 디스플레이 시장이 향후 자동차, 웨어러블, OOH 등 다양한 영역으로 더욱 확장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각광받고 있는 분야는 차량용 디스플레이다.

예전의 네비게이션을 생각해보자. 콕핏의 중간 부분에 부착되어 있었던 손바닥만한 네비게이션은 이제 커브드 스크린뿐만 아니라 HUD(Head Up Display) 방식으로까지 제공되고 있다. 특히 HUD는 탑재 공간 확보와 비용의 이유로 고급 차종을 중심으로 탑재됐으나, 안전성을 이유로 최근 중형은 물론 경차까지 확대 적용되는 추세다.

엔비직스 AR HUD 서비스 화면. [출처]_엔비직스 홈페이지
이와 같은 트렌드 속에서 더욱 주목받는 기업은 AR HUD 글로벌 선두업체인 영국의 엔비직스(Envisics)가 있다. 엔비직스는 지난 2020년 10월, 현대모비스의 300억 원 투자금 포함, 5천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하며 2억 5천만 달러 이상의 기업 기술 가치를 인정받았다. 엔비직스가 주력하는 AR HUD는 차량 주행 정보와 전방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연계해 전면 유리창에 보여주는 편의 장치로, 크게 기하광학 방식과 홀로그램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다. 차량 전면에 일정 부피 이상의 공간이 필요한 기하광학 방식과 달리 디지털 홀로그램 방식은 소프트웨어만으로도 시야각 제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효율적이지만, 속도 지연 및 저화질이라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엔비직스는 이러한 단점을 딥러닝 기반 알고리즘으로 해결, AR HUD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바 있다.

 

일상에서 발견되는 디스플레이 콘텐츠

쿨러 스크린의 디스플레이 화면. [출처]_쿨러 스크린

디스플레이 기술이 일반화되며 기존 광고 매체가 아닌 공간과 구조도 매체로 활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거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광고 매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공간을 디지털 사이니지로 변환, 광고 디스플레이 매체로 활용해 눈길을 끄는 스타트업이 있다. 그 이름도 쿨한 ‘쿨러스크린(Cooler Screens)’이다. 쿨러 스크린은 기존의 냉장고 문이 투명하다는 점에 착안, 리테일 매장 내 냉장 통로의 유리문에 인터랙티브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부착했다. 디스플레이 화면에는 제품의 광고 화면이나 영양 정보, 가격 등 프로모션 내용이나 브랜드 필름이 재생되며 소비자는 브랜드와 교감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토대로 쿨러스크린은 지난 10월 8천만 달러 이상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 대기업이 디스플레이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필요한 소재와 기술은 대기업 산하 업체, 혹은 수주업체에서 다루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스플레이 산업 특성상 개인 차원에서 제품 연구 및 개발하기 어렵기 때문. 이에 완성된 대기업의 기술에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나 자체 기술력을 더하는 방식이나 공동 연구 개발 형태의 투자를 종종 볼 수 있다.

 

점 하나의 차이로 바뀌는 기술

닷의 점자 패드. [출처]_닷 홈페이지

2020년 11월,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C랩 아웃사이드’에 선정된 촉각 디스플레이 스타트업 ‘닷(dot)’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닷은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해 한 줄로만 가능하던 점자 기기를 모니터 한 면에 구현, ‘닷 패드’로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림, 지도 등을 자유롭게 점자로 변환할 수 있는 코딩 서비스를 구축했다. 그리고 ‘닷 워치’라는 스마트 워치 형태의 디바이스를 개발, 시각 장애인도 자유롭게 그림을 이해하고 스마트 디바이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020년 12월, 닷 측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 중 미국 정부의 1,000억 원 규모 시각장애인 촉각·점자 전자 교과서 디바이스 공급자로 선정되어 세부 사항을 협의 중에 있다고 밝힌바 있다.

 

국내 대기업과의 협업

최근 디스플레이 산업 내 주목받은 협업 사례는 LG 디스플레이가 개최한 ‘2020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 아이디어 공모전’이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신기술 개발 혹은 사업화에 대한 공모전은 종종 볼 수 있었으나, 기술 상용화를 위한 콘텐츠 공모전은 흔히 볼 수 없던 사례였던 것. 과제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적용 가능한 콘텐츠 및 솔루션’ 제안이 주어졌으며, 우승한 버시스, 비주얼 그리고 올블랑 세 기업에게는 각각 1억 원씩의 개발 지원금과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

왼쪽부터 버시스, 비주얼, 올블랑 로고

흥미로운 점은 세 기업의 분야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버시스는 OLED TV와 연계해 동작인식 기능과 함께 게임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게임 콘텐츠를, 비주얼은 증강현실 기반으로 쥬얼리 제품의 가상 착용 서비스를 선보이며 온라인 판매자에게 부담이 되는 반품 비율을 줄일 수 있는 이커머스 콘텐츠를, 마지막으로 올블랑은 OLED를 활용해 집안에서 개인 맞춤형 운동과 식단관리, 운동처방이 가능한 웰니스 콘텐츠를 선보이며 디스플레이 기술이 라이프스타일 부분에서 다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렇듯, 디스플레이가 ‘진열’로만 쓰이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가 다음에는 어떤 뜻의 용어로 사용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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