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ing: 인터넷의 역사

씽크 라운지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34) – 브라우저 전쟁의 시작

팀 버너스-리의 최초의 웹 서버와 브라우저와 관련한 개발이 있었지만, 실제로 인터넷을 통한 웹(WWW, World Wide Web)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것은 마크 앤드리센이 주축이된 NCSA 팀에서 1994년 10월에 모자이크(Mosaic)를 발표한 다음부터다. 그리고, 웹의 폭발적인 증가는 1995년 마크 앤드리센과 짐 클라큭가 설립한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에서 네비게이터(Navigator)를 발표하면서부터 표면화된다. 팀 버너스-리의 최초의 웹…

By
씽크 라운지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32) – NCSA 모자이크, 웹의 세상을 열다

1993년까지 기대와는 달리 고퍼와의 싸움에서 열세를 보이던 웹이 결정적인 승기를 만드는 사건은 과거 인터넷의 공유정신과 관련하여 수퍼컴퓨터 센터를 들여오고, NSFNET의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시카고의 NCSA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게 된다. 1993년 컴퓨터 시장은 이미 IBM PC가 대세를 장악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컴퓨터의 성능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By
씽크 라운지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31) – 월드와이드웹 vs. 고퍼

월드와이드웹의 시대로의 전환은 인터넷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월드와이드웹 이전의 인터넷은 전화를 중심으로 하는 통신망의 연장선에서 고려가 되었던 것이고, 실제로 인터넷 위에서 동작하는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들은 이메일이나 파일을 공유하는 서비스, 서버에 원격접속을 통해서 자원을 공유하는 것과 같이 기본적으로 통신과 공유라는 패러다임에서 진행이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서…

By
씽크 라운지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30) – 유럽입자물리연구소와 SLAC

이제 인터넷 역사의 현장은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간다. 유럽에서도 스위스와 프랑스의 접경에 있는 제네바에는 과학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소가 하나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얼마 전 신의 입자로 얼려진 ‘힉스 입자(Higgs boson)’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가 그것이다. CERN은 1954년…

By
씽크 라운지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26) – BBS 커뮤니티 문화

네트워크를 처음 구현한 프로그래머들은 주로 지식을 교환하기 위한 학자들과 연구를 위해 컴퓨팅 자원을 공유해서 이용해야 했던 과학자들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에 비해, BBS를 만들고 열정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간 사람들은 또 다른 문화를 가진 집단이었다. 그 중에서도 인터넷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커뮤니티는 컴퓨터 컨퍼런싱이라는 테마로…

By
씽크 라운지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25) – 민간사업자들의 시대, 독점을 막아라

초고속 인터넷 망을 국가차원에서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서 IT 강국으로 올라선 것을 DJ 정부 최고의 업적 중의 하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MB정부의 4대 강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이 DJ정부의 지식정보화 정책이었고, IMF로 국가가 힘이 들 때 이 정책이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되었던…

By
씽크 라운지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24) – BBS와 PC통신 전성시대

이처럼 인터넷이 전쟁과 국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연구자들의 네트워크와 대학을 엮으면서 학술적인 목적의 공유를 위한 목표로 확산되어 나가면서, 일부 일반인들이 대학의 계정을 얻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지역별 네트워크 구축에 참여한 영리기업들에 의해 전화접속을 이용한 서버를 호스팅하는 서비스들이 조금씩 활성화되었다. 또 한 가지 변화의 바람은 PC의 보급이…

By
씽크 라운지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23) – 인터넷, 민간조직 지배체제에 들어가다

인터넷은 수 많은 기술들의 집합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커뮤니티의 집합이다. 이렇게 거대한 인프라가 동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커뮤니티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런 체계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런 커뮤니티 정신은 ARPANET의 초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ARPANET 연구를 하던 연구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By
스타트업 가이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22) – 열린마음의 선지자들, 시장을 열다

인터넷의 상업화는 단지 사설 네트워크 서비스와 같은 서비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기술을 구현한 다양한 상업적 제품들이 개발되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초에 TCP/IP 프로토콜을 구현한 기업들이 수십 개 등장하였고, 이들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서 네트워킹을 구성하는 기관이나 기업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By
스타트업 가이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21) – NCSA의 탄생과 NSFNET

래리 스마르의 주장으로 UIUC의 8명의 교수들이 모여서 작성한 블랙 제안서(제안서의 표지가 검은 색이어서 그렇게 불리웠다고 한다)는 제안서가 채택이 된다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간략히 적은 것으로, 1983년 NSF에 제출되었다. 짧지만 과학계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담겨 있었기에 NSF에서는 이 제안서에 흥분을 하게…

By
스타트업 가이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20) – 래리 스마르와 슈퍼컴퓨터

지금까지 인터넷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에서 전쟁과 미국 국방부의 전략, 그리고 대학들의 연구를 위한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또 하나의 기술이 있었으니, 바로 슈퍼컴퓨터이다. 슈퍼컴퓨터의 발전 슈퍼컴퓨터는 강력한 연산기능을 가진 컴퓨터로 1960년대 세이머 크레이(Seymour Cray)가 CDC(Control Data Corporation)라는 회사에서…

By
스타트업 가이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19) – 인터넷, 전 세계의 대학을 엮다

최초의 인터넷은 실험적으로 활용이 되면서 주로 컴퓨터 과학이나 네트워크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미국의 정부부처나 연구기관들이 인터넷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연구지원을 하였는데,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에서 만든 MFENet이나 HEPNet, 나사에서 구성한 SPAN, 그리고 미국 국가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서 연구자금을…

By
스타트업 가이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18) – 많아진 네트워크, 이름이 필요해

1980년대 들어 네트워크 사용이 가능한 PC와 워크스테이션의 보급이 확대되었는데, 이 때만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네트워크는 밥 멧칼프가 개발한 유선 네트워크 기술인 이더넷이었다. 원래 ARPANET이 설계될 때만 하더라도 각각의 네트워크 노드에 32비트(4바이트)가 할당되었는데, 그 중에서 상위의 1바이트만 네트워크를 대표하는데 이용하였다. 이는 256개의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그 아래에…

By
스타트업 가이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17) – 마우스의 아버지, 더글러스 엥겔바트

오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마우스의 발명자이자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의 사실 상의 아버지, 모든 데모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비록 세상에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처럼 떠들썩하게 알려지지는 않겠지만, 그의 유산과 업적은 스티브 잡스를 능가하는 것이기에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연재에서 순서와는 좀 다르지만 오늘은 더글러스…

By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