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스타트업 하기 (6)] 개발자들에게 구애하기

안녕하세요 벤처스퀘어 독자님들! 이번에는 두 주만에 뵙네요.

저는 새로운 스타트업을 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개발자들을 만나왔습니다. 다행히 제 아이템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다양한 스킬셋을 가진 개발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이들 개발자들과 만나면서 경험한 점, 깨달은 점 등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현재 미국에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매우 귀해 개발자 파트너를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업 아이템만 보고 자신의 개발 리소스를 쏟으려는 개발자가 줄어들고 있어 개발자 파트너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능력있는 개발자를 섭외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스킬이 필요합니다!

개발자에게 구애하기

전 언어에 핸디캡이 있는 마케터인데다, 미국에서의 네트워크도 변변치 않다보니 제 능력과 미래 가치를 사 줄 개발자를 찾는 것은 더욱 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미국인 개발자 입장에서 보면, 안그래도 러브콜을 많이 받는데 굳이 저를 파트너로 선택할 이유가 없겠죠. 특히, 시장성을 테스트할 최소 존속 제품(MVP: Minimun Viable Product)을 개발하려면 수 십, 수 백시간이 걸리는데, 아무리 사업 아이템이 맘에 들고 시장성이 있어보여도 저 ‘에이프릴‘ 이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같이 일하려 들지 않겠죠.

그러나 아무리 개발자 파트너 찾는 일이 힘들어도, 개발자 없이 마케터가 혼자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긴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개발자 찾아 삼만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각기 다른 성향과 전문성을 갖춘 개발자를 여럿 만났고, 세 번쯤 퇴짜를 맞아보고 나니 ‘아, 이런 개발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공략해야 겠구나’ 하는 감이 조금 생겼습니다.

첫번째 구애 : 슈퍼스타 개발자가 요구하는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61623410@N08/7033121879

능력있는 개발자 일수록, 수준 높은 시장 조사 자료를 요구합니다. W는 슈퍼 스타 개발자 입니다. 이 친구는 아이디어를 듣자 마자 바로 시장 규모 산출(market sizing)에 대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규모를 얼마로 보느냐‘, ‘이 중 타깃하는 세그먼트가 뭐냐‘, ‘어떻게 초기 고객을 모을 생각이냐?’ 등등. 지금 돌이켜보면 예상하고 준비했어야 하는 당연한 질문이었음에도, 나름 제 아이디어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자부했건만 금방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당시 개발자만 구하면 만사형통이다라고 생각했던 저는 일단 개발 요구 사항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으니, 나머지는 제품을 가지고 테스트 해 가면서 준비해갈 안일한 생각이었던 거죠. 게다가 누구도 처음 아이디어를 듣고는 그동안 이렇게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었기에 W의 쏟아지는 질문에 저는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 개발팀을 이끌며 마케팅 등의 타 부서와 일하고 있는 W에겐 시장의 잠재성과 기대 수익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개발 리소스에 대한 시간당 가치 관념이 분명해 내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쏟았을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를 빠르게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와 같은 슈퍼스타 개발자에게 구애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우리가 타깃하는 시장 규모는 이런데, 구상 중인 최소 존속 제품(MVP)은 이거야. 매출은 이 정도에, 이 때쯤이면 수익 분기점을 지날테고, 그럼 이 만큼이 네 몫이 될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어야 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걸 다 어떻게 아냐구요? 사실, 시장 규모, 기대 수익이라는 것에는 여러가지 가정과 낙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개발자가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했을 때, 그가 슈퍼스타 개발자 일수록 마케터는 고차원적인 비즈니스 대화가 가능하도록 충분히 준비했었어야 하는 것이죠.

제 아이디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들어준 개발자였는데, 저는 이 소중한 기회를 준비 부족으로 말아 먹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구애: 끊임없이 나의 역량 셀링하기

두 번째 구애 사례 입니다. MIT출신의 K라는 친구는 한 달에 한번 진행되는 시애틀 린 스타트업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그의 경우 처음부터 제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를 혹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에게 보여준 설문 조사 결과 자료였습니다. 시장의 크기, 시장성, 고객 답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차트를 보여줬는데, 개발자로서 항상 고객의 니즈 파악에 목마름을 가지고 있던 그는 우리가 서로 협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개발자로서 초기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는 대신 그의 아이디어를 듣고 그가 시장 규모, 고객 니즈 파악을 할 수 있도록 마케터의 노하우를 전수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서로 일하는 방식도 비슷해 함께 일하면 좋겠다고 내심 기대하고 있던 어느날, 그는 제게 ‘미안해. 다른 많은 일이 있어서 네 아이디어를 우선 순위에 놓고 시간을 쏟기가 어렵게 되었어‘라고 말했습니다. 네, 그날 저 퇴짜 맞은겁니다. 그 땐 별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뭐야. 이게 코리안 디스카운트?’하는 찌질한 생각까지… 그런데, 나중에 그가 그러더군요. ‘처음엔 너를 통해 마케팅 비법을 전수받고자 했는데, 어째 너로부터 내가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라고요.

그는 제 머릿 속에서 진행되는 아이디어 도출 과정, 전략 도출 과정을 그가 아끼는 ‘더 린 스타트업(The Lean Startup)’ 책에서 사용된 용어와 프레임워크에 맞춰 설명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입장에선 일부러 책에서 사용된 프레임워크에 맞춰 생각을 재정립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기에, 그가 묻는 것에만 수동적인 답을 하기 시작했고, 그는 곧 내가 그의 성장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마케터로서 개발자에게 제 역량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일을 통해 보여주면 되지 ‘난 이거 잘 해‘라고 뽐 낼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문제는 제가 현재 개발자 구애 과정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겁니다. 서로에 대한 탐색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에게 성공적으로 구애하기 위해선 ‘너, 두 번 다시 나같은 사람 찾기 힘들걸. 난, 보석같은 마케터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어야 했던 것이죠. 그게 말 많은 자기 자랑일지라도요.

기타 개발자들과 대화하기 위한 노하우

개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와 예산입니다. 반면에 마케터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매출을 발생시킬지가 중요한 고민거리입니다. 이렇게 중시하는 포인트가 다르다보니, 나는 이런 이런 것을 요청했는데, 개발자의 머릿 속엔 다른 그림이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 개발자들은 ‘네가 원하는 것이 A이니? B이니?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하곤 합니다. 이때, 기술적 용어, 다른 선택 안이 발생시키는 차이에 무지한 마케터 혹은 비개발자들은 ‘별로 상관없으니 알아서 정해‘라고 답하곤 합니다. 이런 대화법은 개발자들을 의욕 상실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개발자들 역시 함께 일하는 상대가 자신들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주길 바랍니다. ‘네가 이 분야 전문가니까 알아서 결정해.’라는 태도는 자칫하면 ‘나는 사실 별로 알고 싶지 않고, 어떻게 하든 아웃풋만 잘 보여줘‘라고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은 산출물만 보면 별거 아닌데 개발자에겐 굉장히 많은 시간과 공이 드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비개발자 파트너가 기술에 무지한 경우 개발자들은 자신들의 고충을 이해 받을 길이 없습니다. 때문에, 경험이 적은 개발자 일수록, 혹은 열정이 많은 개발자 일수록 함께 일하는 비개발자의 기술 이해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들은 연장을 들고 뭐든 두들겨서 만들려는 열정이 강한 부류로 SpurOn에서 함께 일했던 개발자 D가 바로 이런 부류였습니다. 이들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비개발자가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기술적인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개발자들을 만나면서 겪은 사례를 중심으로 비개발자로서 숙지하고 준비해야할 것들을 적어 봤는데 지난 주에 한 주 글쓰기를 쉬어서 그런지 글이 조금 두서가 없지요?

최근 저는 Noam Wasserman의 “The Founder’s Dilemmas“라는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고 있답니다. 한국에는 아직 안 알려진 책인 듯 한데, 빨리 다 읽고 다음 주에는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건강한 한 주 되세요!

글: 에이프릴

%d bloggers like this: